[네티즌 칼럼] 역사에 대한 무책임이 ‘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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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08-14 00:00
입력 2001-08-14 00:00
일본과 친하면 죄일까? 최근 개봉된 일본 애니메이션 ‘내이웃의 토토로’를 보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일본인들을만날 때마다 욕을 퍼부어 주어야 할까? 그것은 아니다.일본과 친한 것은 친일이 아니다.일제 물건을 쓰는 것도 친일은 아니다.우동이나 생선회를 먹는 것도친일이 아니다.일본 노래를 흥얼거려도 친일은 아니다.오히려 그런 것들은 권장돼야 할 일이다.우리는 이웃 일본과 친해야 한다.

그렇다면 친일은 무언가? 정확히 말하면 친일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행위를 용인,또는 협력을 하는 행위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이미 과거에 묻혀 있다.즉 친일은 존재하지 않는다.그렇다면 이 시대에 친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를 탄생시킨 힘의 논리,강자의논리,파쇼의 논리,극우주의,가진 자의 논리,과거에 대한 무반성,진리 앞에서의 태만함,역사 앞에서의 무책임,사회 앞에서의 교만함.그 모든 것이다.그것이 바로 친일이다.

우리가 그런 친일과 제국주의를 추궁하는 것은 선과 악을가르자는 단순한 이분법적 발상은 아니다.우리가 친일을비판하는 것은 과거 때문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할 미래때문이다.그것은 미래 앞에서 한국과 일본이 해야 할 신성한 약속 때문이다.

사회는 무수한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가도 하나의 약속이고 법률도 하나의 약속이다.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대한 민국 헌법을 중심으로 한 무수한 약속들의 총체이다. 그런데 자신의 이익을 내세워 그 약속을 교란할 때는 대한민국의 값어치가 추락한다.대한민국의 존엄성이 훼손된다.

한 나라의 값어치는 그 국가가 가진 약속의 총량과 그 약속들의 질적인 치밀함과 그 약속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가로정해진다.친일이 나쁜 것은 다른 모든 약속까지를 무효로만들기 때문이다.시민이 법을 어기면 처벌받고 나오면 그만이다.전과자라도 죄값을 치르면 선량한 시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친일행위는 항구적으로,천년 후에도 이 나라의 모든약속을 밑바닥에서 교란시킨다.

헌법의 권위를 훼손시키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좀먹고 그모든 약속들의 값어치를 떨어뜨린다.그 친일행위의,그 제국주의의 배후에 숨은 힘의 논리,강자의 논리,약육강식의 논리,반지성주의의 논리,극우주의 바로 그런 것이 사회의 모든 약속을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힘의 논리로 다 된다면 약속이 무엇에 필요한가? 강자의논리가 먹힌다면 약속이 무엇에 필요한가? 정권이 바뀌면휴짓조각이 될 법이 무엇에 필요한가? 생존경쟁의 논리로다 된다면 국가와 사회는 왜 필요한가? 그냥 힘센 자가 각자 알아서 살면 되는 것 아닌가? 힘으로 안되고,강자의 논리로 안되고,약육강식으로 안되고이성과 지성이 떠받드는 약속으로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하지만 강자들은 약속을 깨버려도 현실적으로는 피해가없다.그 약속의 깨뜨려짐에 피해를 당하는 것은 언제나 약자이다.우리 사회내 친일의 잔재는 국가의 존엄성을 밑에서부터 허물어버린다.

한 소설가의 친일 발언 한 마디, 한 신문사의 대수롭지 않은 역사 덮어 버리기가 과거 일본의 침략보다 더욱 위험하다. 그런데도 친일의 자세를 견지하는 자들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래보다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부지런하다.미래가 있어서 우리는 또 약속해야 한다.이 약속을 등지는 자들에게 분노하지않으면 우리도,또 그들도 이 땅에 살 이유가 없다.친일에분개해야 하는 이유이다.

김동렬 심플렉스인터넷 고문 drkim@simplexi.com
2001-08-1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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