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백조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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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08-09 00:00
입력 2001-08-09 00:00
4주간에 걸쳐 영국에서 자료 조사를 끝내고 파리에 들렀다.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는 한 목사님 댁에 머물면서 며칠동안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여름 휴가철에 파리 시민들은썰물처럼 파리를 떠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여행객들이 그들이 빠져나간 그 공간을 채운다.

거리마다 배낭여행을 하는 한국의 젊은이들로 넘쳐난다.그들은 저마다 유럽여행을 소개한 안내책자를 들고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이제 이런 여행은 한국과 대만 젊은이들의 전매특허가될 것 같다.그들은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돌면서 안내서에적인 관광명소를 찾아다닐 것이다.

한국의 교육 자체가 그러하듯이, 우리 젊은이들의 여행도근본적으로 최소의 투입에 최대의 산출을 노리는 포디즘적성격을 띠는 것 같다.여행의 기쁨과 그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일은 아마도 그것을 넘어,그곳 사람들의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관찰할 때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번잡한 도심을 피해서 파리 근교의 공원이며 보베 지방의 농가들을 둘러보기도 했다.소호공원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그곳은 파리에서는 보기 드문 광대한 숲으로 뒤덮여있었다.나는 드넓은 호숫가의 벤치에서 가벼운 여행기를 읽었다.공원을 산책나온 노부부의 웃음과 유치원 꼬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와 배낭을 맨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공원의 정적을 이따금 깨뜨릴 뿐이었다.

유럽의 강과 호수에는 무수한 오리와 백조들이 한가롭게노닌다.특히 유유히 흐르는 물결에 몸을 내맡긴 백조의 우아한 모습은 언제 보아도 새롭다.나는 호수에서 노니는 두마리의 백조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백조 한쌍 바로 옆에 작은 오리새끼가 따라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백조가 그 오리새끼를 돌보는 것으로 착각했다.사실그 새끼는 오리가 아니라 어린 백조였다.나는 백조가 어릴때 오리와 마찬가지로 검을 털로 덮여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그들이 성장한 후 털갈이하면서 순백의 깃털로 바뀐다는 것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새끼’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씌어진 모양이다.근처의 노부부가 백조 가족에게빵부스러기를 던지고 있었다.백조 부부와 어린 새끼들이 그 부스러기를 먹느라고 물살을 헤치며 다가왔다.근처의 오리떼도 노부부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때 나는 수컷처럼 보이는 백조가 광포한 소리를 지르며오리떼를 위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오리떼는 백조의위세에 눌려 감히 노부부 쪽으로 접근하지 못했다.백조 가족은 그들이 던져주는 먹거리를 한점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는 역시 허구다.나는 그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백조의 이면에 숨겨진 포악한 근성을 엿보았다.

이 사회에서도 이런 일을 자주 본다.우리는 겉으로 드러난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쉽다.겉모습에서 풍기는 인상을 통해 사물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즉흥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젊은이들이 배우자를 고르는 일도,사람들이 정치인에 표를 찍는 일도 모두 그 깊은 내면의 세계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외모며 말솜씨며 제스처를 통해 결정한다.

노부부는 바게트 빵이 다 없어지자 그 자리를 떠났다.백조가족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가롭게 흐르는 물살에 몸을맡기며 멀어졌다.그들이 떠난 그 자리를 다시 오리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벤치에 몸을 누이고 여행기를 읽었다.파리 근교소호공원의 오후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조용한 정적으로 빠져들었다.

이영석 광주대 교수
2001-08-0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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