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을 찾아] 흑백TV속 ‘프로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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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07-28 00:00
입력 2001-07-28 00:00
김일 선수가 상대편 일본선수의 머리에 연거푸 박치기를 해댈 때면 흑백 TV앞의 코흘리개 꼬마나 동네 대머리 아저씨들이나 다같이 박치기 횟수를 세가며 요란스레 환호했다.
하루가 지나도 김일선수의 호쾌한 박치기는 곳곳에서 화제가 된다.
초등학교의 쉬는 시간,사내아이들이 교실벽에 머리를 박아꿍,쿵,궁 하는 소리로 학교가 시끄러워지곤 했다.
이처럼 60년대초 막 보급되기 시작한 흑백TV로 중계되었던프로레슬링의 인기는 대단했다.경기가 열릴 때면 수천명이몰려들어 아우성을 쳤고 전국민은 TV앞에 모여들었다.
방송 관계자들은 “60년대 초부터 10여년 동안 연중 10회가량 실시되었던 각종 프로레슬링 중계방송은 그야말로 전국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TV마저 흔치 않았던 당시 동네 구멍가게와 만화가게 등에는마치 영화개봉을 알리듯 프로레슬링의 TV 방송일정이 나붙었다.
김일의 박치기,천규덕의 당수,여건부의 알밤까기와 안토니오 이노키,자이언트 바바 등을 모르면 대화에 낄 수 없었다.
헤드록,드롭킥,코브라 트위스트 등 레슬링의 기술 몇가지는상식쯤으로 통했다.한마디로 프로레슬링은 인기절정의 스포츠였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100㎏이 넘는 선수들이 피를 흘려가며 고전하다 막판 박치기와 시원한 발차기로 일본선수를 때려 눕힐 때면 전국민은 울분을 삭히듯 환호했다.이런 인기에 당시 프로레슬링 선수들은 청와대 경호실이나 경찰관 특채 제의도 거절할 정도로 잘 나갔다.
그러나 흑백 TV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프로레슬링은 흑백 TV와 더불어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인식과 레슬링계 내부의 문제점이 여기에 일조를 했지만 사회가 급변하면서 국민들이 즐길 수 있는 오락물이 다양해진 데 더 큰 이유가 있었다.
80년대들어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등이 국민적인 관심을 모으면서 프로레슬링은 점차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하지만 프로레슬링 경기는 지금도 열리고 있다.
연간 40∼50회는 꾸준히 열린다.선수도 200명을 육박하던전성기 때보다는 못하지만 60여명이 프로레슬링협회에 정식등록되어 있다.
이들은 역도산,김일 등 화려했던 선배들의 옛 영화를 꿈꾸며 열심히 기술을 익히며 몸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 한국 프로레슬러로는 33년만에 처음으로 WWA(세계프로레슬링협회) 챔피언에 올라 레슬링 부활의 중심에 선 이왕표 선수는 “90년대들어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살아나고 있다”며 대중화를 위해 레슬링을 기초로 한 ‘격기도’를보급하고 있다.그는 “프로레슬링은 쇼가 아니라 프로축구,프로야구와 같이 엄격한 규칙에 의해 진행되는 스포츠”라며 “조만간 옛 인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할의 꿈을 말한다.
이동구기자 yidonggu@
2001-07-2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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