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 소설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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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05-07 00:00
입력 2001-05-07 00:00
연극의 막이 올라가듯 소설 ‘파라다이스’(토니 모리슨 지음,김선형 옮김)는 상처받은 여성들의 쉼터인 수녀원에 몰아닥치는 살인극으로 그 첫장을 장엄하게 연다.

수녀원은 루비라는 작은 마을의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수녀원에는 늙고 병든 수녀와 콘솔레이타라는 여자가 살아간다.

이곳에 여자들이 하나씩 모이기 시작한다.뜨거운 차안에 쌍둥이를 방치해 질식사시킨 뒤 죄책감 때문에 가정으로부터도망친 메이비스,미혼모에게 버림받은 세레카,애인이 자신의 어머니를 선택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팰레스….소설은 서사 구조가 아닌 인물 위주의 옴니버스 구조를 택했다.등장인물마다 각기 그들의 인생을 보여준다.

수녀원과 이웃한 루비 마을은 미시시피와 루이지애나주의해방노예들이 세운 작은 공동체로 전통의 가치를 중시하며보수적이다.그러나 어두컴컴한 길을 여자 혼자 걸어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그 누구도 범죄와 일탈을 꿈꾸지 않았던 그들만의 루비 마을에도 변화는 시작된다.10대 소녀가임신을 하고,평범한 가정주부가 아이를 돌보는 스트레스로인해 미친다.가부장적 사고를 거스르는 변화의 물결에 위기감을 느낀 마을의 남자들은 수녀원을 악의 원천으로 지목한다.그곳의 여성들이 세상에서 도피한 만만한 사람들이었기때문이었으리라.

이 작품은 추리소설처럼 시종일관 긴장감이 넘친다.치밀한심리 묘사와 생생한 상황 설명은 상상력이 부족한 독자라도쉽게 소설 속 상황에 빠져들게 한다.

그러나 긴박한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점도있다.남성을 가해자로,여성을 피해자로 설정하는 90년대식페미니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남성들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는 여성들의 삶이란 소재는 한국에서도 90년대 초·중반에 많이 등장했다가 철퇴를 맞은 바 있다.

지은이 토니 모리슨은 지난 1988년 자유를 위해 딸을 살해한 탈출 노예의 이야기를 그린 ‘빌러브드’로 퓰리처 상을받았다.93년에는 흑인 부부의 삶을 재즈처럼 슬프고 변덕스럽게 표현한 ‘재즈’라는 소설로 미국계 흑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탔다.들녘은 토니 모리슨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파라다이스’를 국내에소개한 데 이어 ‘빌러브드’와 ‘재즈’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이송하기자
2001-05-0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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