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서산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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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03-28 00:00
입력 2001-03-28 00:00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사는 1,500여명의 승군을조직,명나라 군대와 함께 평양성을 탈환하는 데 공을 세웠다.명(明)의 원병도 청병사신이항복(李恒福) 편에 대사의서찰을 받은 석숭대사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서산은 또 이순신(李舜臣)이 공을 세우고도 모함으로 옥에 갇혀 있을 때 몸소 찾아가 위로하고 작전을 논의했다는 일화도 남겼다.
탄신 481주년을 맞아 불교계에서 대사의 재조명 움직임이활발하다.민중의 여망이 모아지다 보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이지만, 대사의 행적이 기적을 행사한 기승으로만전해지는 것은 불교계를 위해서도,민족을 위해서도 유감이다.
[오늘 나의 행적은 후학들의 이정표가 되나니] 스스로 이런 글귀를 남겼으니 그의 생애와 사상,정신세계의 깊이를재조명하다 보면 오늘 우리 현실에 대한 답이 나올지도 모른다.불교계의 서산대사 재조명 작업은 그런 점에서 적절한 것 같다.특히 수행에 투철하지도 못하면서 선승입네하고 현실에 오불관언하는 사람들,참으로 중생에 대한 연민도 없으면서 현실참여 한답시고 수행에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서산대사의 행장이 졸음을 깨우는 죽비가 되지 않을까.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2001-03-2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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