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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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03-27 00:00
입력 2001-03-27 00:00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일본형(자포니카) 쌀은 인도형보다 길이가 짧고 끈기가 많다.밥을 지으면 기름기가 자르르흘러 군침을 돌게 한다. 푸석푸석한 보리밥보다 쌀밥은 맛이 좋다.밥 맛을 결정짓는 것은 우선 볍씨다.과거 쌀 부족시대에 증산용으로 심었던 통일벼는 굶주림 해소용이었지맛은 별로였다.요즘은 ‘일품’,‘일미’와 ‘남평’ 등고품질에 수확량이 좋은 품종이 다수 등장했다.이 품종들은 전국 쌀 생산량 가운데 24% 정도를 차지한다.
같은 품종이라도 심는 곳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개화도등 간척지 쌀이 으뜸으로 꼽힌다.경기도 쌀과 이천쌀은 우선 선호대상이 되고 다른 지역 쌀보다 값도 비싸다.그러나경기미는 총생산량중 11.6% 정도에 불과해 속아 사기 십상이다.질소비료를 적게 주면 쌀의 단백질 비중이 줄어 밥맛이 더 좋아진다.일조량이 많거나 홍수로 벼가 쓰러지지 않았을 경우 밥 맛이 더 낫다.또 오래 묵은 쌀보다 갓 수확한 햅쌀이 맛있는 것은 당연하다.
쌀 증산정책이 요즘 자연스레 맛 위주 정책으로 선회하는모양이다. 무엇보다 풍작으로 재고량이 급증,올 연말에는1,000만석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이 물량을 1년간 창고에서 보관하려면 820억원이 든다.80㎏가마당 4,450원꼴이다.
막대한 재고관리비용에다 고기와 빵에 밀려 줄어드는 쌀소비도 증산정책을 퇴색시키고 있다.소비자들은 이제 맛이좋으면 더 비싸도 산다. 가공된 쑥쌀과 까만 쌀(흑미)이멥쌀보다 아주 비싸지만 팔리는 세태다.
‘양보다 맛 위주’ 생산으로 농민들은 발빠르게 전환하고 있다.‘진천 일품쌀’ 등 브랜드까지 띄우려고 한다.생산지역과 함께 품종까지 쌀 포장용기에 표시하는 것이다.
정부는 아직 어정쩡한 입장이다.당국자들은 “흉년이 몇년간 지속되면 쌀이 부족해질 수 있다”며 “증산정책을 포기하는 것은 때이르다”고 밝히지만 여론의 눈치를 보는듯하다.국내 쌀값은 국제시세보다 5∼6배 비싸다.품질마저떨어지면 그야말로 소비자에게 ‘밥맛없는 일’이 될지 모른다.이제 정부도 고품질 위주의 쌀 정책을 소신있게 펴야할 때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2001-03-2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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