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서 캐낸 고대사의 진실
수정 2001-03-07 00:00
입력 2001-03-07 00:00
고구려 주몽의 아들 온조가 남하하여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정하고 백제를 세웠다(B.C. 18).…3세기 중엽 고이왕 때에이르러,백제는 확대된 영토와 통치 조직을 갖춤으로써 중앙집권 국가로서의 기틀을 잡아갔다.’이는 교육부가 발행한 고교 국사 교과서 상권 45∼46쪽에 실린 초기 백제에 관한 설명이다.이 서술은 그러나 근본적인모순을 안고 있다.한국 고대사를 해석하는 상반된 두 흐름가운데 하나를 택하지 않고 양쪽을 뒤섞었기 때문이다.
한국 고대사는 ‘삼국사기’초기 기록을 인정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그 체계가 전혀 달라진다.삼국사기는 백제 건국 시기를 서기전 18년으로 못박고,시조인 온조 당대에 한반도 중부를 장악한 강력한 국가를 건설했다고 기록했다.반면 사학자·고고학자들의 대부분은 이 기록을 부정하고 일제이래 일본 황국사가들이 만든 틀,곧 백제·신라는 서기 3∼4세기 가서야 비로소 국가다운 국가로 성립된다는 학설에 묶여 있다.
하지만 이제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풍납토성이 그 실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이 토성은 성벽만해도 폭 40m,높이 최대 15m,둘레 3.5㎞나 되는 아시아 최대규모임이 밝혀졌다.게다가 탄소연대측정 결과 성은 빠르면기원 전후,늦어도 서기 200년쯤 축조가 끝났음이 확인됐다.
삼국사기가 기록한 시기에 서울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국가가 존재했음을 풍납토성은 웅변한 것이다.
‘풍납토성,500년 백제를 깨우다’(김영사 펴냄)는 이처럼중요한 의미를 지닌 풍납토성에 관한 나무랄 데 없는 ‘보고서’다.저자는 연합뉴스의 문화재·학술 담당기자인 김태식씨.그는 발굴현장을 발로 뛰고 관련문헌을 샅샅이 뒤져 논문처럼 정교하고 소설처럼 재미있는 책을 엮어냈다.이 책을 읽고 나면 풍납토성이 왜 ‘한국의 트로이’고 꼭 보존해야 할유산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용원기자 ywyi@
2001-03-0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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