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도대체 책임지지 않는 사회
기자
수정 2000-12-01 00:00
입력 2000-12-01 00:00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
“과거는 빨리 잊고 미래만을 생각하자”또는 “과거를 자꾸 들추어내기만 해서 좋을 것이 무엇이냐”는 아주 그럴싸한 말들이 설득력을얻어간다. 몇년전 발생한 IMF 환란 때에도 책임 지는 사람은 없었다.
청문회가 열렸어도 책임자는 없었다.IMF환란으로 고통을 당한 서민만이 있을 뿐이다.
5·18민중항쟁에서도피해를 본 사람들은 많은데 가해자는 명확히밝혀지지 않았다.그런데도 우리 사이에선 용서를 하자느니,과거를 잊고 5.18을 미래지향적인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들이 나온다.용서를 할 대상이 없는데 누구를 용서하고,지금도 이루 말할 수없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많은데 왜 축제의 장이되어야 하는지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
해방이 된 후에도 우리는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그러다보니 누가 무엇을 구체적으로 잘못하였는지,누가 민족의 이익을 위해 일했는지,누가 민족의 반역자였는지를 알 길이 없다.지금은 모든것이 뒤죽박죽되어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아노미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각종 범죄가 발생하여도 내가 죄를 지었고 그렇기 때문에 반성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법정에서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라고뻔뻔하게 말하는 자들뿐이다.그들은 법정에서 유죄가 밝혀지더라도사면이니 가석방이나 보석이니 해서 다 풀려난다.책임지는 사람도 없고,법적 책임도 조금만 지나면 유야무야되고 마는 사회이다.
한국의 보수 신문들은 이런 논리 개발에 가장 앞장선다.조선일보는과거에 저지른 천황에 대한 맹세와,전두환정권 하에서 그를 입이 닳도록 극찬한 것에 대하여 침묵하며 과거를 잊자고 한다.동아일보도일제하에서 저지른 친일 행각과 손기정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에 대하여도 역사 왜곡을 하며 그 사건이 자세하게 밝혀지는 것을 꺼린다.어쨌든 일장기 말소는 우리가 했다는 식이다.한국언론은 5·18 민주항쟁 때에도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몰아간 것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각종 사건에서 왜곡 보도를 일삼으면서도 이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역사가 중요한 것은,잘못된 과거를 반성하고 이를 거울 삼아 그러한 일이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우리를 뒤돌아 볼 수 있기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역사를 배울 필요도 없고 초·중·고,대학교에서도 역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그런데도 친일 행각을 옹호하거나권력에 빌붙어 성장해 온 세력들은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는 주장을펼치며 자기들의 과거 행동을 적당히 얼버무리려고 한다.
역사는 바로 세워져야 하고,잘못된 행동은 반성을 통해서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우리의 사회,정확히는 지배계층은 그런 점에서 도대체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이다.오히려 책임을 떠안는 사람들은 묵묵히 국가와 지배 세력의 말에 따라준 기층민중이다.돈을 빼먹은 사람은 책임지지 않고,그에 대한 책임이 기층민중에게만 전가되는뻔뻔한 사회이다.
■임 동 욱 광주대교수·언론학
2000-12-01 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