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모 ‘한국의 풍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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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11-07 00:00
입력 2000-11-07 00:00
18세기 말에서 19세기를 거치며 조선은 그 기반이 됐던 성리학적 유교이념과 봉건적 생산관계가 붕괴되고 근대사회를 향한 커다란 변화의 발걸음을 내딛었다.이러한 당대의 사회변동과 시대감정을 가장 사실적이고 충실하게 반영하며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회화영역으로 자리잡은 그림이 바로 풍속화다.그러나 풍속화의 근대적 지향성과 조선적 자주성은 다양한 주제의식에만 그치지 않는다.당대의 화가들은 새로운 현실 소재에 대한 자신의 화의(畵意)를 표현하기 위해 현장사생에 관심을 쏟았고 대상에 대한 탐구를 계속했다.이를 통해 조선의 회화는 기존의 중국적이고 낡은 필묵법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인간 삶을주제로 하는 풍속화는 하나의 예술작품이자 동시에 소중한 역사자료로 가치를 지닌다.

‘한국의 풍속화’(정병모 지음)는 풍속화의 역사를 신앙적·종교적 기원에 의해 제작된 풍속화,정치적 필요에 의해 제작된 풍속화,통속적인 생활상을 표현한 풍속화의 세 유형으로 나눠 고찰한다.저자(경주대 교수)는 이 세 유형의 풍속화가 서로 밀접한 관련을맺고 있음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밝힌다.그동안 풍속화에 대한 연구가 18세기이후의 풍속화로만 제한되거나 단순히 역사적으로 개관하는 데 그쳤던 것과는 좀 다른 접근법이다.



저자에 따르면 통속 및 생활 관련 풍속화는 18세기 전반에는 16∼17세기의 산수인물화의 형식을 빌려 시작됐고,18세기 후반에는 정치적인 풍속화인 빈풍칠월도류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그것은 또한 신앙적인 풍속화인 감로도(甘露圖)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통속적인 생활상을 다룬 풍속화는 다른 두 유형의 풍속화와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신앙적인 풍속화와 정치적인 풍속화가 조선의 멸망과 함께 세력이 급속히 약화된 반면 통속 및 생활과 관련된 풍속화는 표현매체를 달리할 뿐 지금까지도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고 있다.

풍속화는 당대의 사대부들에 의해 ‘속화(俗畵)’라 불렸다.그만큼멸시를 당했다.그러나 풍속화는 조선 후기(18∼19세기)의 사회상을생생히 읽게 하는 귀중한 문화사료이자 고전예술의 꽃이다.저자는 ‘통속성’을 핵심 잣대로 한국 풍속화 나아가 통속문화의 역사적 흐름을 살핀다.진정한 통속의 세계는 곧 진정한 아취의 세계라는 대속대아(大俗大雅)의 정신으로 통속문화와 고급문화의 접점을 모색한다.한길아트 펴냄,4만원김종면기자 jmkim@
2000-11-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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