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인터넷 등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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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8-29 00:00
입력 2000-08-29 00:00
국내 한 케이블 TV가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에로티시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방영한 적이 있다.100년전 50센트짜리 극장에서 상영된 초기 흑백 무성영화에 무희가 허리를 흔들고 중년의 남녀가 키스하는장면이 나오자 종교·시민단체가 “인간을 타락시킨다”며 일제히 반발하는 내용이 소개된다.경찰서장이 손수 검열에 나서고 시장은 아예모든 극장에서 이 영화 상영을 금지시켜 버린다.영화 검열의 시작인셈이다. 국내에서는 얼마전 시민단체가 영화 ‘거짓말’ 개봉에 맞춰제작자와 감독을 음란물 제작·배포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성표현과 이를 규제하려는 윤리규범의 공방전은 영화 탄생 이후 100년이 넘도록 종지부를 찍지 못한 진행형의 역사이다.‘아날로그시대100년의 역설’이기도 하다.

지난 1996년 2월8일 인터넷에는 다소 과격한 선언문이 올랐다.선언문은 이렇게 시작된다.“산업세계의 정권들,너 살덩이와 쇳덩이의 지겨운 괴물아,나는 마음의 새 고향 사이버공간에서 왔노라.미래의 이름으로 너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우리를 건드리지마라.너희는환영받지 못한다.네게는 우리 영토를 통치할 권한이 없다…”.미국의정보자유주의자들이 주창한 이른바 ‘사이버 독립선언’이다. 사이버공간은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공간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배타적자유를 부르짖고 있다.아날로그 세상에서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표현의 자유를 디지털시대에서 맘껏 펼쳐 보이자는 뜻이 배어 있다.

디지털시대의 화두(話頭)가 자유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익명성과다양성, 자발성을 토대로 구현되는 가상사회가 다름아닌 사이버공간이기 때문이다.그런 사이버공간도 어두운 측면을 안고 있다.음란·폭력물과 프라이버시 침해,욕설·비방,원조교제,사이버 성폭력,온라인도박 등이 그것이다.

정보통신부가 추진중인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네티즌들의 거센반발을 사고 있는 모양이다.유해성 정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인터넷 콘텐츠마다 등급을 매기자는 것이 네티즌들에게 사이버 자유를 속박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는 듯하다.급기야 정통부 홈페이지가 등급제에 반대하는 네티즌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당하는 불상사까지 빚어졌다.



물론 “사이버시대에서 자유의 꽃인 인터넷상의 의견개진에 검열이웬 말이냐”는 네티즌들의 항변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사이버세계가 비록 시공의 한계를 초월하는 자유의 공간일지라도 기본적으로 인간에 의해 영위되는 삶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자유와 책임,권리와 의무가 질서있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아날로그시대의 역설’은 또다른 100년 뒤까지 되풀이될지 모를 일이다.

박건승 논설위원 ksp@
2000-08-2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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