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산상봉/ 귀환 방문단 밤새 얘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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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8-19 00:00
입력 2000-08-19 00:00
“평생의 소원을 풀었습니다.이제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핏줄을 만났다는 기쁨과 흥분을 뒤로 한채 집으로 돌아온 이산가족들은 헤어지는 순간까지 눈에 담으려던 혈육의 모습을 떠올리며 하얗게 밤을 지샜다.상봉 당시를 되새기며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는가 하면,어떤 가족들은 허탈함과 사무쳐오는 그리움을 추스르지 못해 식욕부진,불안,우울증 등 상봉 후유증을 겪고 있다.장엄한한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린 18일 밤은 이산가족들에게 또다른 만남을기약하는 시간이었다.

*부모·자식.

■15일 서울에서 형님 이종필씨(69)를 만난 동생 종덕씨(63·충남 아산시 탕정면 명암1구)는 “치매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가형님을 알아보셨다”며 기적같은 상봉 순간을 상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99세로 이산가족 상봉자중 최고령인 조원호 할머니는 20여년간 치매를 앓아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으나 상봉 첫날 아들 종필씨를 알아보는 기적과도 같은 상봉을 연출했다.

헤어지면서 “통일의 그날까지 몸 건강히 잘 있으라”는 형님이 말에 눈물만 나오더라는 종덕씨는 “어머니가 헤어지는 순간에도 형님을 알아보시며 손을 놓지 않으셨다”고 회고했다.

■북쪽의 아들 강영원씨(66)를 만나고 온 박보배 할머니(90·전주시인후동)는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대학교수로 잘 살고 있어 한시름 덜었다”며 “아들이 며느리가 직접 지은 한복 두벌과 며느리와손주 모습이 담긴 가족사진을 주었는데 평생 제일 맘에 드는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강씨의 남쪽 조카인 강석기씨(39)는 “큰아버지가남쪽 가족들의 사진이 든 앨범을 소중히 가지고 가면서 ‘우리가 죽더라도 너희들은 꼭 통일을 이룩해 서로 왕래하며 지내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이산가족 방문단 의료진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한 고 장기려 박사의 아들 장가용(張家鏞·65) 서울대 의대 교수는 “현대적 도시로 변해버린 평양에서 만난 북한사람들로부터 ‘물자는 풍족하지 못해도열심히 사는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장교수는 “회색빛고층아파트가 즐비하고 대규모 지하철이 다니는가 하면 대동강 폭도3배로 넓어지는 등 완전히 현대적인 도시가 돼 옛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고 평양의 오늘을 전했다.

*부부.

□50년전 소식이 끊긴 남편 이복연씨(73)를 기다리면서 평생 수절하며 살아온 이춘자씨(72·안동시 동부동)는 “떠나는 남편에게 ‘건강하십시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이제는 50이 넘은 아이들에게도아버지가 살아계신 모습을 보여줘 여한이 없고 막상 다시 헤어지자니너무 섭섭했다”고 울먹였다.

심장병과 고혈압으로 고생하고 있는 이씨는 남편과 헤어진 뒤 곧바로 아들 이지걸씨(53)의 경기도 일산집으로 가 안정을 취했다.

□상봉을 거부하던 아내와의 극적인 해후로 화제가 됐던 북한의 영화촬영감독 하경씨(74)의 남쪽가족들은 짧은 만남 뒤의 긴 이별을 괴로워했다.

17일 남편 하씨와 만난 아내 김옥진씨(78·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는그날 밤 곧바로 성남으로 내려왔으나 18일에는 애끊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듯 하루종일 집을 비웠다.

장남 문기씨(54)는 “통일되면 다시 만나자고 약속은 했지만 그 약속을지킬 수 있을지 착잡한 마음 뿐”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형제·자매.

■서울을 찾은 언니 김옥배씨(62·평양음대 무용과 교수)를 어머니홍길순씨(88)와 함께 상봉했던 숙배씨는 “살아 있는줄 몰랐을땐 가끔 그립기만 했는데 이제 헤어지고 나서 보고 싶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어머니는 가슴이 아프다며 식사도 안하시고 어제는 혼절까지 하셨다”며 “헤어지는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다”고말했다.

김씨는 이어 “언니는 해방 직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서를 53년째간직하며 힘들 때마다 ‘훌륭한 사람이 돼라’는 내용의 아버지 유서를 보고 또 봤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 최고의 인민화가 정창모씨(68)의 여동생 춘희씨(61·경기도군포시 수리동)는 “오빠는 매우 당당하고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었다”며 “가족을 버리고 월북한 이유와 북한에서의 생활,앞으로의 계획등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춘희씨는 북한에서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고 있는 오빠로부터 귀중한그림을 선물받았다. 4점은 북한에서 직접 가져왔고,4점은 약 40분간에 걸쳐 그린 수묵화였으며,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조국 만세’라는글도 선물받았다.“오빠에게 한복 두벌과 양복을 선물했다”고 밝힌춘희씨는 “그러나 시간이 없어 충분히 선물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기타.

□남측 이산가족들의 3박4일간 평양방문에 남북적십자 교류전문위원자격으로 동행했다 돌아온 소설가 이호철(李浩哲·68)씨는 50년만의혈육의 상봉을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감동이 가시지 않은 듯 흥분을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북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을 연작이든 단편이든 반드시소설로 작품화하겠다”고 밝혔다.

□평양에서 가족을 만나지 못한채 돌아온 이종백씨(69·서울 양천구신정동)는 큰 소리로 엉엉 울면서 김포공항 입국장을 빠져 나와 보는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씨는 “바로 아래 동생 종윤(60)이가 아파서 만나지 못하고 생전 얼굴도 모르던 동생 종덕(53)이만 보고 왔는데 주위 친지들의 소식을 잘 알지 못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통곡했다.그는 또 “종윤이를 못 만나게해 북에 눌러앉으려다 주위의 설득으로 참고 왔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김재순기자 fi
2000-08-1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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