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 칼럼] 박정희기념관 아닌 국가자료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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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7-25 00:00
입력 2000-07-25 00:00
결론부터 말해서 정부의 박정희기념관 건립 지원문제는 유보하는 것이 옳다.일반 정치사안이나 정책문제는 때에 따라 정부의 입장과 일관성 때문에 강행이 불가피한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박정희기념관건립문제와 같은 역사적사안은 국민여론과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신중하게 결정하고 일단 결정했더라도 국민의 뜻이 아니라면 재고하거나 취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전대통령기념관 건립문제는 현안이나 정책문제가 아니다.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관점에서 100년 200년을 내다보고 결정해야 하는 역사문제다.정부의 발표와 함께 찬반론이 활발하고 다수의견은 불가쪽으로 잡힌 것같다.찬반론의 쟁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먼저 찬성론이다.

1)국민화합론-영호남의 지역주의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태에서 영남을 상징하는 박정희기념관을 호남을 상징하는 김대중대통령정부가 건립함으로써 국민 화합을 모색할 수 있다.

2)민주화·근대화세력의 접합-박전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화세력과 김대통령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화세력이, 남북화해 협력시대가본격적으로 열리는 시점에서 기념관건립을 계기로 새로운 통일시대에 대처하게 된다.

3)보복정치의 단절-박전대통령으로부터 온갖 정치적 보복과 탄압을 받아온김대통령이 이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정치보복 단절의 계기가 된다.

4)정치적인 억압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근대화정책의 성공으로 국민에게 ‘잘살아보자”는 의욕을 고취시키고 산업화를 일으켜 근대국가로 도약한 박전대통령의 각종 자료를 모아 기념할 만하다.또 후발 국가들의 교육기관으로도활용가치는 충분하다.

다음에는 반대론을 들어보자.

1)일본군으로 복역하면서 항일군에게 총질을 하는 민족반역의 전력은 결코용납될 수 없다.

2)군사쿠데타로 합법정권을 타도하고 장기군사정권을 수립하여 정보정치·폭압통치로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자다.

3)지역차별을 통해 지역갈등을 조성하고 지역주의를 심화시켰다.

4)영구집권을 위해 유신체제를 만들고 장준하, 최종길, 인혁당사건 등 수많은 사람을 살해·처형했다.아직 유신피해자의 진상규명도 배상도 안된 상태이다.

5)백범김구선생 기념관 건립에 100억원을 지원하면서 박정희기념관 건립에 200억원을 지원한다는 것은 비중이나 국민정서에 역행된다.

6)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월드컵경기장주변에 조성되는 공원에 특정인의 기념관을 세우겠다는 것은 과학과 미래를 상징하는 그 지역의 특성상 부합되지않는다.

7)경제발전이라는 결과 때문에 독재자의 기념관을 세운다면 국민의 가치관이나 2세교육의 목표와도 모순된다.

8)역사적 문제를 동서화합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역사문제는 역사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9)개혁과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남북화해협력을 국정의 기조로 하는 ‘국민의 정부’의 정체성에도 위배된다.

이처럼 찬반론이 치열하고 각기 주장에 있어서 명분과 논리가 충분하다.

때문에 접합점을 찾기도 쉽지 않다.그렇다면 이를 유보하고 대안을 찾는 방법이 나을 것이다.

우리는 일제시대 임시정부를 지키면서 온생애를 항일독립운동에 바치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하다가 암살된 백범김구선생의 기념관을 이제야 시작했다.사후 50년 만의 일이다.그런데 그와 크게 대칭되는 박전대통령의 기념관을 사후 20여년밖에 안되는 시점에서 정부가 조급하게 서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 의병기념관도, 민주화운동기념관 하나도 짓지 못한 실정이다.

어려운 국가예산 관계로 선후를 가려 역사적 안목으로 기념관이나 자료관을지어야 할 것이다.박정희기념관은 좀더 역사적 평가를 지켜보면서 국민의 공감대가 넓어질 때 지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박정희 기념관건립을 유보하고 대신 역대 대통령의 자료관을 지어그 안에 박전대통령의 각종 자료와 기록을 보존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다른 전직대통령과의 형평성과도 부합된다.

파리에 있는 나폴레옹의 묘비가 백면(白面)인 채 무명(無銘)인 것은 최대의찬사와 극악의 저주를 똑같이 용납할 수 있는 프랑스인들의 양식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없을까.

김삼웅 주필 kimsu@
2000-07-2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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