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인 화약고 中東에 가다/(중)분단 현장 골란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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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6-23 00:00
입력 2000-06-23 00:00
[메달샴즈(골란고원) 남정호특파원]이스라엘 북부 골란고원 최북단 정착촌메달샴즈 마을 뒤 시리아쪽 접경지역에 ‘절규(絶叫)의 계곡’이 자리잡고있다.

매주 금요일이면 67년 ‘6일 전쟁’과 73년 ‘욤 키프르 전쟁’ 때 헤어진가족과 친척들이 이 계곡에 모여 철책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수동 마이크를통해 절규하듯 서로 안부를 묻는 계곡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랍어로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뜻을 지닌 메달샴즈 마을은 인구 6,500여명의 골란고원 지대 최대의 두르즈인 마을.이슬람 교도들과 같이 알라신을믿는 종파지만 언어도 땅도 없는 종족으로 골란고원 일대와 시리아,레바논일대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다.비록 이스라엘 군대에 점령돼 있지만 두르즈인들은 아직도 친시리아적이며 이스라엘에 대단한 적개심을 갖고 있다.

메달샴즈에서 태어나 자란 후 현재 시내 중심가에서 환전가게를 운영하고있는 알람 슈피(55)씨는 자신도 금요일이 되면 시리아쪽에 살고 있는 친척을만나기 위해 절규의 계곡을 찾는다고 했다.그는 “메달샴즈는 전쟁이 가져온분단 비극의 관광무대가 되었다.금요일이 되면 이산가족들의 절규 속 상봉을 구경하려고 관광버스들이 몰려든다”고 말했다.

남북 길이 70㎞,동서 폭 25㎞에 넓이 450㎢에 달하는 골란고원은 1967년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전쟁으로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되었고 1973년 전쟁 때점령지가 더 확대됐다.골란고원 일대는 드문드문 정착촌과 키부츠 마을만이눈에 띌 뿐 두차례의 전쟁으로 옛 시리아 마을들은 철저히 파괴되고 건물들에는 지금도 총탄 흔적이 벌집처럼 남아 있다.‘욤 키프르 전쟁’때 1,500대의 시리아 탱크 가운데 1,200대가 1주일 사이에 파괴된 곳이다.지금도 부서진 탱크의 잔해가 도처에 남아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을 말해주고 있다.

골란고원은 이스라엘과 시리아 양측에 전략적 요충지로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땅.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 군대는 골란고원 일대를 전격적으로점령해 버렸다.그러다 73년 시리아군이 영토 탈환을 위해 침공해오자 이스라엘군은 다마스커스를 향해 진격,골란고원 일대를 다시 손아귀에 넣어버렸다.

그 뒤 이지역에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정착촌들을 넓히며 81년 이스라엘영토로 병합,오늘에 이르고 있다.

골란고원은 현재 이스라엘과 시라아와의 사이에 UN 평화유지군이 관장하는완충지대가 형성돼 UN군이 순찰을 하고 있다.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가집권하면서 시라아와 평화협상을 추진하다 현재 봉착 상태에 빠져 있으나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이 마무리되면 골란고원의 운명은 다음 협상테이블에 올려질 예정.그러나 이스라엘로서는 시리아측이 주장하는 골란고원의 완전반환을 받아들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입장이다.이스라엘 정부와 의회내 강경파들은 전략요충지인 골란고원을 반환할 경우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을 들어 반환에 반대하고 있다.

이 구약과 신약성서의 발자취가 널려 있는 골란고원 일대는 점차 관광지로각광받고 있다.특히 이스라엘인들의 정착촌과 키부츠에서 재배하는 과일과포도주는 세계적 평가를 받고 있다.중부 골란고원의 베론 골란 촌락에 거주했었다는 모데사이 모르템(55)씨는 “요즘 골란고원 지역에 관광객 버스들이부쩍 늘어났다”면서 훌라계곡 쪽을 손으로 가르켰다.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땅,이스라엘과 시리아가 한치도 양보하기 어려운골란고원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 세계의 이목이 항시 이곳에 쏠리는 이유는 이 지대가 중동지역의 화약고로 언제 어느 때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2000-06-2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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