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체트 면책특권 박탈, 과거청산 차원 처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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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6-07 00:00
입력 2000-06-07 00:00
루벤 바예스테로스 항소법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건을 22명의 전체합의에 부친 결과,찬성 13표,반대 9표가 나와 면책특권을 박탈키로 했다”고말했다.
법원 판결 발표가 나자 산티아고 거리에는 피노체트 군정시절 희생당한 유가족들과 인권단체 시위자들이 몰려나와 ‘피노체트를 감옥으로’를 외치며축하행진을 벌였다.
국제사면위원회,휴먼라이트 워치 등 국제 인권단체들도 ‘혁신적인 결정’‘국제사회와 인권범죄를 저지르는 모든 독재자들에 매우 중요한 경고’라며 환영했다. 미 정부도 5일 국무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항소법원이 중요한일을 해냈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피노체트 변호인단은 5일 이내 대법원에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판결 존중’을 강조해 온 칠레 정부의 입장,인권유린 독재자 처벌을 강력히 요구하는 국내외 여론 등을 감안할 때대법원 판결은 ‘통과의례’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따라서 피노체트를 상대로 제기된110여건의 죄목에 대한 진상들이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측근 3,000여명의 군부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도 뒤따를 공산이 높아졌다.
피노체트의 ‘수호신’인 의원 면책특권의 박탈 판결을 가능케 한 배경은바로 ‘과거청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칠레의 정치·사회 분위기.지난 3월 취임,‘사법권 독립’을 천명한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은 피노체트 군정시절 감옥과 망명생활을 되풀이해온 피해자다.여기에 후안 구스만 판사는 영국에서 가택연금 생활을 하다 3월 귀국한 피노체트에 대해 73년 ‘죽음의 특공대’가 저지른 74명 정치인 살해사건의 배후인물로 수사,전격 기소했다.
산티아고 항소법원은 재판에 앞서 피노체트의 면책특권을 박탈할 것을 요구한 고소인들의 신청과 “피노체트가 의원 신분인 만큼 법원이 면책특권 박탈여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는 칠레 정부의 의견을 받아들인 뒤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
한편 사법처리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의견도 많다.피노체트가 84세의 고령으로 쇠약해져 있고 의회 면책특권과는 상관없이 3월 말 전직 대통령들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의회 등 기득권 세력의 반발도 만만찮기 때문이다.그러나 개정법안에 대해 승인 처리를 하지 않는 라고스 대통령 등 개혁세력의 입장은 더욱 단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피노체트의 건강을 참작,의외의 판결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하지만 말로에 선 독재자의 운신의 폭이 극도로 좁혀 든 것만은 틀림없다.
김수정기자 crystal@
2000-06-07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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