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민련 원내위상 인정해야
수정 2000-06-05 00:00
입력 2000-06-05 00:00
원내교섭단체 기준을 하향조정하려는 의도가 특정 정당을 위한 것임은 틀림없다.자민련이 4·13 총선에서 20석 이상을 차지했더라면 이같은 시비도 없었을 것이다.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더라도 마찬가지다.
자민련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 자체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의석분포로 따질 때 총선 민의(民意)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당 구조의 탄생이므로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인정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뜻에 역행한다는 논리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자민련을 빼고는 국회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는 데 있다.민주당과한나라당의 의견이 맞선 쟁점 사안을처리하려면 자민련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자민련이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진다. 자민련이 교섭단체로 인정받지 못하면 여야 공식회담에는 민주당과 한나라당만참여하게 된다.논의에 자민련을 끌어들이려면 ‘장외(場外)교섭’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정치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낭비다.자민련 의원들을 개별 설득하는 과정에서 음성적인 거래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원내교섭단체 기준을 20석으로 정한 것은 유신 이후인 73년 8대 국회부터다.
그 전까지는 10석이었다.당시 공화당 정권은 야당인 신민당의 유신 반대 강경파 의원들이 별도의 당을 창당할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해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따라서 20석을 만고불변의 원칙처럼 주장하는 것은 의회주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들은 원내교섭단체의 기준이 아예 없거나 한자릿수에불과하다.사회가 다양화함에 따라 소수 집단이나 계층의 목소리를 국가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다.이를 감안해 15대 국회 막바지에 여야는 원내 교섭단체의 기준을 낮추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다른 시급한 현안에 밀려 결론을내리지 못했었다.
현실 정치에서 자민련은 엄연한 교섭의 상대다.지난 총선에서 재연된 지역구도 측면에서 보더라도 자민련은 충청권에서는 제1당이다.자민련에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부여한 것도 민심(民心)이라고 할 수 있다.자민련의 원내 위상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조정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2000-06-0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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