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300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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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6-03 00:00
입력 2000-06-03 00:00
시인 고은(高銀)씨가 낭독한 선언문은 “남북 정상은 7·4 공동선언과 남북기존합의서의 실천을 재확인하고 정상회담을 정례화하며 온 겨레가 통일의주체로 나서 민족공동체의 새로운 희망을 찾기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300인 선언’은 선언에 참여한 면면이 신뢰할만한 사람들이기도 하지만선언의 내용이 그동안 이들의 주장에 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해 보인 덕택인지 대체로 시민의 폭넓은 공감을 얻은 것 같다.이들은 남북문제의 뜨거운감자인 ‘국가 보안법’과 ‘주한 미군’문제에 대해 그동안 민간인 차원의논의수준에 비해 매우 신축적이고 현실적인 요구를 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정부를 향해 철폐를 주장하던 종래의 입장을바꾸어 냉전적 법·제도를 바꾸는 데 힘을 쏟겠다는 다짐으로 대신했다. 또주한 미군에 대해서는 ‘평화협정 체결’과 남북간 신뢰회복을 기초로 궁극적(언젠가-필자 주)으로 철수할 것을 미국 등 주변 4강에 촉구하는 것으로그쳤다.결과적으로 두 문제를 정상회담의 의제로 요구하지 않아 회담에 임하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입장을 한결 편하게 해 주었다.
만일 이들이 종래의 주장대로 주한미군 철수나 국가보안법 폐지를 의제에올릴 것을 주장하면 보수세력의 반발을 불러오고 결과적으로 회담에 임하는우리측 입장만 더 난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대신 이들은 “정상회담은 냉전대결 구조를 해체하고 평화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며 전쟁방지를 위한 방안 강구,민족공동체 회복과 민족 구성원의 복지향상을 위한 모든 부문의 교류,협력 활성화,정상회담정례화 등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다.
‘300인 선언’이 각별히 의미를 지니는 것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현실인식이 다른 시민운동 세력과 민중운동 세력 등 그동안 다른 목소리를 내던 민간통일운동 세력이 한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이들은 70년대부터 일신의 안위를 무릅쓰고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싸워온,‘민족의 양심’을 대표한사람들이다.민족통일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들이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역시‘민족의 양심’답다는 평가를 듣는다.
김재성 논설위원.
2000-06-03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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