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총리지명자는 누구?
수정 2000-05-23 00:00
입력 2000-05-23 00:00
이 지명자는 경복고와 서울법대를 졸업,58년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합격 발표에 앞서 이등병으로 입대했던 그는 발표 뒤 중위로 임관,군법무관을 지냈다.
63년 2월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법조계에 첫발을 디뎠다.당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함께 근무한 판사 동료였다.68년 법복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했으나 6개월 만에 법무부 법무실 검사로 채용돼 서울지검 특수1·형사1부장 등을 거쳤다.특이하게 판사·검사·변호사를 모두 지냈다.
81년 당시 신군부의 ‘차출’케이스로 검사장 승진의 꿈을 접고 민정당 간판으로 11대 총선 때 고향인 연천·포천·가평에서 출마,원내 진출에 성공한뒤 내리 6선을 기록했다.
여당 원내총무 세번,사무총장 두번,정책위의장에다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때는 대표최고위원까지 고위 당직은 안해본 게 없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88년에는 내무부장관을 역임했다.이지명자는 이때부터 ‘중부권의 대표주자’를자임,당시 김윤환(金潤煥)고문과 당내 최대계파인 민정계를 양분했다.
97년 7월21일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고비로 시련을 겪는다.경선에서3위로 낙선한 이지명자는 15대 대선 이후 당내 비주류의 중심축으로 활동했다.98년 8·31 전당대회에서 또 다시 이총재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지난 1월 보수대통합의 기치를 내걸고 한나라당을 탈당,자민련 총재로 변신했다.
‘일도(一刀·단칼)선생’이란 별칭 답게 두주불사(斗酒不辭)로 유명하지만최근에는 폭탄주를 자제하는 편이다.
대전여중·고와 충남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부인 조남숙(趙南淑)씨와 1남 2녀가 있으며,독서와 등산이 취미.
이도운기자 dawn@
2000-05-23 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