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비평] 언론의 새 방송법 ‘님비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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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2-16 00:00
입력 2000-02-16 00:00
방송법을 다루는 일은 복잡하고도 어렵다.매체마다 사업자마다,정부나 관련기관마다 제각기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정부조차도 문화관광부가 다르고,정보통신부가 다르다.방송사업을 하는 지상파 케이블 중계유선방송,그리고곧 사업이 개시될 것으로 보이는 위성방송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업자마다이해가 제각각이다.

이러니 새 방송법 제정과 그 이후의 시행령 제정 및 방송위원회 구성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보도하는 일 역시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방송관련 집단의 무수한 이해관계를 독자나 시청자에게 단순히 알려주는 일만으로는 보도의 소임을 다했다 할 수 없을 것이다.다양한 사익간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공익적 기준이 함께 제시되어야 독자나 시청자의 판단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 우리는 불행하다.신문사나 방송사 모두 깊든 얕든간에 방송사업적 이해와 얽혀 있고 그로부터 이들의 보도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방송사는 말할 것도 없고,거의 모든 신문사가 위성방송을 비롯한 뉴미디어에 진출하기 위해 방송 또는 통신사업자와 제휴하고 있다.그래서 방송의정치적 독립이니 시청자 주권과 같은 방송개혁의 근본 취지가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작년말 통합방송법이 통과되자 거의 모든 신문이 ‘위성방송 시대 개막’,‘다매체-다채널 시대의 도래’라는 쪽으로 보도방향을 몰고 간 것도 그 때문이다.

새 방송법의 취지를 실현하고 방송개혁의 방향을 가늠할 방송법 시행령에관해서도 신문과 방송들은 자사의 이해관계를 중심에 놓고 보도를 하였다.방송사들은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방송법 시행령안의 무수한 쟁점 가운데서 ‘지상파 TV 중간광고 허용’을 중점 보도했다.

SBS는 1월 28일 저녁 8시 뉴스에서 기자의 리포트로 “프로그램 중간 광고가 허용되어도 전체광고량은 늘지 않는다”,“시청자들은 한꺼번에 많은 광고를 봐야 하는 불편을 덜게 된다”고 주장했다.MBC는 1월 28일과 31일 두차례에 걸쳐 중간광고에 대한 보도를 하면서 “물건을 살 때 돈을 내듯이 좋은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선 소비자들도 광고를 봐줘야 하고…중간광고는 이런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도했다.중간광고 도입을 주장하는 문화부장관과 광고업자의 멘트를 직접 인용했지만 시청자나 시청자 단체의 주장은 소 개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거의 대부분의 신문들은 사설과 기사를 통해 중간광고 반대를 주장했다.신문들의 주장은 일반 국민의 여론을 존중하고 있고 타당한 논리적근거를 갖추고 있지만,어딘지 좀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방송법 시행령안의핵심적 쟁점이 되는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나 방송구조 개편에 관해서는 별반 언급이 없고 “다른 것은 들지 않더라도”(중앙일보),“대표적인 것으로서”(문화일보) 중간광고 도입 비판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에 관해 위성방송에 진출하려는 신문기업의 입장에서는 지상파 TV에 중간광고를 허용할 경우 위성방송의 광고물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감안되었을 것이라는‘미디어 오늘’의 2월 3일자 기고가 왠지 마음에 걸린다.

신문과 방송들의 속내를 추정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는 방송위원 선임에관한 보도이다.

새 방송법에 따라 방송위원회는 지상파와뉴미디어를 아우르는 정책권과 인허가권,방송 심의 평가 등을 행하는 권한을 갖게 되고, 비록정부와의 일부 합의 조건이 있기는 하나 직무상 독립된 기구로 출범하게 된다.

문제는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방송위원이 얼마나 전문성과 대표성,개혁성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다.하지만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들은 이에관해침묵을 지켰다.실제로 규제대상인 방송사 출신,광고업계 인사가 상당수 임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매일과 한겨레만이 이에 관한 해설 기사와 시민단체의 비판적 지적을 보도했을 뿐이다.

그런 가운데 조선일보 12일자 가판에 실린 “방송위원 선정 잘못됐다” 는 칼럼은 눈을 번쩍 뜨게 하였다.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내판에서는 빠져버렸다.

새 방송위원회의 위원이 되기 위해서 수많은 인사들이 로비를 해왔다고 한다.언론사들이 자사 출신의 인사를 방송위원으로 밀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그런 언론사들이 방송위원 선임 결과에 대해서 문제를 삼을리 없다는 현실은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한다.

엄주웅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실장
2000-02-1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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