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시론] 노자 강의와 시각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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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2-12 00:00
입력 2000-02-12 00:00
어쨌든 그는 청중의 눈 높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적절한 수준으로 강의를 이끌어가며,가끔 가수나 탤런트들을‘카미오’로 출연시키는 것도 대중과 대중매체의 속성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사람들이 단순히 듣기만이 아니라 보기 위해 음악회를 가듯이 청중들은 직접 그의 퍼포먼스를 보고 강의의 열기를 느끼고자 녹화장까지 찾아가는 것이다.결론적으로 그는 이미지시대에걸맞은 비디오 스타일의 강사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강사의 스타일은 시각적인데 내용은 글 중심이며 강의방법 또한 상당히 전통적이라는 사실이다.그는 대형 강의에 으레 동원되는 그 흔한 오버해드 프로젝터나슬라이드 등을 외면한 채 백묵을 부러트려 가며 칠판에 끊임없이 판서를 하면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TV의 속성을 이렇게 잘 이해하는 분이 정작 그것을 잘보지 않을 뿐더러 ‘컴맹’이라는 사실이다.물론 어린이도 통달하는 컴퓨터언어를 이해 못해서가 아니다.그는 소외 일로에 있는 글 문화를 보전하고 고전과 인문학의 전통을 살려야 한다는 소신을 누누이 강조하며 인터넷과 사이버문화가 주도하는 이미지와 정보의 범람이 주는 폐해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도스에서 윈도시스템으로 넘어가는 것과 함께 세상은 문자의 시대를 뒤로 하고 이미지의 시대로 진입하였고 시각문화라는 말이 나돈 지도 한참이 되었다.정보통신혁명이니 벤처기업이니 하는 말이 귀가 따갑도록 들리고 변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가속화하고 있는 듯하다.‘인터넷’은 이제 전 국민이‘IMF’라는 단어만큼이나 익숙하게 구사하는 외래어가되어가고 있는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가상현실이 실제보다 더 효과적인 현실로 대두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많은논의가 있었지만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시스템을 통해 제공되고 소비되는 정보는 그 시스템 자체에 대한 각성을 배제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위험을 내포하고 있다.일례로 미술 분야에 등장한 가상의 미술관은 작품 이미지가 작품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며,이런 현상은 종국에는 이미지가 미술을 대치하고 자료보관소가 미술관을 대치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극단적인 예측까지 불러왔다.
서양의 한 철학자는 일찍감치 현대의 특징으로 정보로 충당되는 세계관에대해 논한 바 있다.즉 세계가 인간의 욕구에 부응하여 점점 더 효과적으로정복될수록 그리고 사물이 점점 더 객관적으로 보일수록 역설적으로 그것은더 주관적으로 되어서 세계의 이미지는 사람 중심의 원칙으로 변한다는 것이다.여기서 세계의 이미지라는 것은 반드시 그림을 그린다는 뜻이 아니고“그림이 그려진다”라고 할 때와 같은 의미이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원근법이 세계를 조망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확립되었듯이 인간이 일정한 시스템에 의해 세계전체를 분류하고 정의하는 것을 말한다.세상이 그림처럼 파악되는 세계,즉 인간 중심의 재현을 통한 세계관의확립은 인본주의의 정점일지 모르지만 철저히 비인간화되는 데 문제가 있으며 인터넷은 그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당연히 인간의 의미도 변화할 것이다.그러나 그 변화의 거시적인 배경과 틀을 이해하는 것이 시대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전제이다.거대한 사이버화의 물결에 맞서 고전 읽기의 의미와 필요성을 역설하는 김용옥씨의 메시지가 과연 어느 정도 이해되고 성과를 거둘지 궁금해진다.누가 뭐라해도 인터넷과 정보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시각문화 역시 우리의 일상을 더욱 촘촘하게 간섭하는 틀이 될 것이다.그의 드높은 대중적 인기가 가닿을 곳이 어디인지 더욱 관심이 가는 까닭이다.
강태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2000-02-1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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