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개안후의 심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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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1-29 00:00
입력 2000-01-29 00:00
“내 딸 좀 보자.아이고 내가 눈이 있어야 보제! 내 딸 좀 보자.두 눈을 끔적끔적 눈을 번쩍 떴구나.”판소리 ‘심청가’에서 심봉사가 황성의 맹인 잔치에 갔다가 황후가 된 심청이를 만나 두 눈을 뜨는 대목이다.심봉사뿐만 아니라 그곳에 참가했던 모든맹인이 눈을 뜨게 되면서 ‘심청가’는 희극적 광명의 세계로 끝을 맺는다.이는 문학에서 있을 법한 허구적사건이다.

그러나 허구가 아니라 실제 속에서 오랫동안 맹인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수술을 통해 눈을 떴다면 과연 정상인처럼 쉽게 살아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쉽지 않다.아일랜드 극작가인 브라이언 프리엘의 희곡 ‘몰리 스위니’는 30대 후반인 맹인 여성이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 개안을 하여 세상을 보았으나 혼란과 불안,공포로 인해 다시 세상을 보지 못하는상태로 되고 마는 삶을 극화한 것이다.

이 작품이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 임상 기록서,즉 신경학자인 올리버 섹스의인간의 기적〉을 보면,수술이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사태에 직면한사례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모든 감각기관이 서로 보완적인 상태에 있는 정상인들은 시간과 공간 두 차원에서 생활한다.그러나 맹인들은 오로지 시간의 세계에서만 생활한다.맹인들은 감각(촉각,청각,후각)을 통해 어떤 인상을 받으면,그것을 토대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따라서 시력이 회복된 후에도 촉각에 의존하지 않고는 공과 꽃을 구별할 수 없다.촉각으로 구성된 자신만의 세계는 해체되고 시각을 통해 새롭게 세계를 구성해야 하기에 낯설은 세계에 적응을 못했을 경우수술 전보다 더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맹인이 눈을 뜨면 곧장 정상인들과 똑같은 광명의 세계가 열려,그 세계 속에서 정상인처럼 마음껏 행동하고 사고하리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정상인의 시선이다.

정상인의 맹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방식이 성립하려면,정상인 중심으로 생각하는,몰이해한 시선의 편견이나 폭력이 있어서는 안된다.



정상인과 맹인의 관계를 포함하여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이해 관계는 시선을내가 아닌 타자에 두었을 때 깊어진다.그렇지 못했을 경우,비록 작품 속이긴 하나,심봉사와 모든 맹인들이 눈을 떠 흥분한 것은 잠시일뿐이다.황당하게펼쳐지는 세상을 향해 지팡이를 휘두르며 벌어질 사태를 상상해보라.

“심청아,세상이 왜 이리 뒤죽박죽이냐.나,일 없다.도로 눈 감을란다.심청아!” 홍창수 극작가
2000-01-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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