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대학의 경쟁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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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9-09-16 00:00
입력 1999-09-16 00:00
최근 들어 ‘대학의 경쟁력’이란 말이 정부나 언론 뿐 아니라 대학사회 내에서도 자주 화두가 되곤 한다.대학이 ‘수월성’을 추구해야 한다든가,대학에 경영기법을 도입해야 한다든가,대학 교육이 소비자 중심체제로 바뀌어야한다든가 하는 주장들이 새삼스러운 듯이 대학 안팎에서 제기되었고,실제로경영학이나 공학과 같이 이제껏 ‘장사꾼’이나 ‘공돌이’를 키워낸다고 다소간 경멸어린 시선을 받았던 학문분야의 교수들이 빈번하게 대학총장의 자리에 오르고 교육부 역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이러한 분위기에 힘을 보탰다.

더욱이 ‘세계화’의 열풍 속에서 대학의 경쟁력은 국제적 경쟁력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부여받아 국가경쟁력을 재는 주요한 지표의 하나가 되었고,그리하여 국내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학조차 종합적인 평가에서는 세계 500위에도 들지 못하고 ‘과학 기술인용색인(SCI)’ 학술지 게재 논문편수로는 100위권 정도에 불과한 ‘우물 안 개구리’임이 드러났다.

대학의 내실과 외형을 정량화하여 순위를 매기는 대학평가방식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대학을 보편적 이성이나 민족문화의 담지자로 보는 전통적인대학관에서 보자면,세계의 대학들을 이러저러한 양적인 척도로 재는 것 자체가 대학에 대한 모독이요,더 나아가서는 민족문화와 국민문학의 존재이유를부정하는 처사이다.

사실상 적지 않은 대학의 구성원들이 요즈음의 세태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데에는 이러한 ‘인문주의적인’ 분노가 심층에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필자 역시 이러한 분노를 공유하고 있음이 솔직한 고백이나,현실의 긴박함은 대학평가 자체를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백보 양보하여 대학평가제는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평가의 방식이라는 문제는 남는다.정말이지 평가방식을 현실에 맞게 제대로 다듬어 대학교육과 연구의 발전을 꾀할 수만 있다면,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상당한 비용을 들여 어렵사리 대학평가를 실시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의 대학평가는 결코 그러한 방향으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여기서는 여러 문제점 가운데 하나만 지적코자 한다.‘평가영역 및 부문별 가중치’가 그것이다.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대학순위를 매길 때,평가영역과 가중치는 다음과 같다:교육 20,강좌의 규모(교수 1인당 학생수) 18,교수 20,재정 10,도서관 12,학교의 명성 20%.이 지표의 설정에 대해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적어도 위의 평가방식은 ‘좋은 대학’이 무엇이냐에 대해 또렷한 견해를 보여준다.특히 교수의 수와 도서관이 독자적인 항목으로 들어있음에 우리는 유의코자 한다.

이와는 달리 평가업무를 교육부로부터 위임받은 ‘대학교육협의회’의 평가기준은 다음과 같다: 교육 23,연구 11,사회봉사 8,교수 16,시설 설비 20,재정 경영 22.보다 자세한 평가부문을 봐도 교수 1인당 학생수나 도서관에 대한 명백한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계량화할 수 없는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화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왜 우리 대학은 경쟁력이 약한가? 이 물음은 마치 과거의 우리 대학은 그런대로 괜찮았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하나,과거의 교육여건이 얼마나 열악했던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다만 그간의 경제성장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국가경쟁력의 신장을 위해서라도 대학경쟁력을 운위할 단계는 됐다는 정도로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그렇다면 정부와 사회는 대학을 ‘취업자 양성소’ 정도로 보지 말고 교육과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도서관과 실험설비 그리고 교수의 대폭 확충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정말이지 교육부가 대학의 경쟁력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진정한 개혁’을 추진한다면,대학사회는 헌신적으로 이에 동참할 것이다.

현재 교수들이 교육관계법의 개악이나 ‘두뇌한국(BK)21’사업을 반대하는것이 집단이기주의의 발로이기는커녕 교육부가 제대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못한 데 대한 반발과 비판임을 특히 정부와 국회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갑수 (서울대교수. 서양사)
1999-09-1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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