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대한매일신보 직원에 서훈
수정 1999-08-14 00:00
입력 1999-08-14 00:00
1880년 서울태생인 이선생은 1903년 미국 하와이에서 신민회를 조직,활동하였으며 1905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공립협회’ 대의원으로 활동하였다.또 미주 한인사회 최초의 신문이자 공립협회 기관지인 ‘공립신보(共立新報)’의 주필을 맡아 애국언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1908년경 귀국한 이선생은 당시 국내의 대표적 항일지인 ‘대한매일신보’에 입사,업무직 사원으로 활동하면서 양기탁(梁起鐸)총무 등을 도와 ‘신보’ 발행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특히 이선생은 1909년 12월 이재명(李在明)의사의 이완용(李完用) 처단사건의 연루자로 일경에 체포돼 고초를겪기도 했다.당시 연루자 13명 가운데는 이선생과 같이 대한매일신보에 근무했던 임치정(林蚩正)선생도포함돼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불기소로 풀려났다.오랜 신병으로 고생하던 이선생은 1936년 4월 서울 삼청동에서 56세로 타계했다.유족으로는 손자 이정원(李貞園·50·인천 거주)씨가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1999-08-1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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