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3김론’의 허구」’後3金’ 신조어 나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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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9-08-12 00:00
입력 1999-08-12 00:00
‘3김’은 성(姓)이 같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김종필(金鍾泌)총리,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을 통칭하는 말로 그 어원은 70년대 유신체제와 싸우던‘양김’에서 출발한다.
이후 양김은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3김’‘양김’‘3김정치(방식) 청산’‘3김 청산’‘후3김 시대’라는 변천을 겪게 된다.97년 대선 전까지만해도 언론 용어이던 것이 97년 대선을 기점으로 정치적인 용어로 변질된 느낌도 준다.
유신체제에서 언론은 김대통령과 김전대통령을 일컬어 ‘양김’으로 불렀다.당시 동교동과 상도동으로 대표되던 양김은 국민들에게 ‘민주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그러던 것이유신체제가 종말을 고한 뒤 ‘80년 봄’을맞아 ‘3김’이라는 용어가 생겨난다.성씨가 같은 세 사람이 유력한 대통령후보였기 때문이다.그러나 군부의 등장으로 역사의 뒷마당으로 사라졌다.
3김이라는 용어는 87년 대선에서 ‘1노(盧) 3김’이 경쟁하면서 다시 등장했다.이후 3당 합당으로 치러진 92년 대선에서는 ‘양김’이 경쟁,‘양김’이라는 용어가 다시 오르내렸으나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97년 대통령선거에서 성이 다른 이회창(李會昌)후보가 여당 후보로나서면서 ‘3김 정치 청산’이라는 신조어가 새롭게 등장,정치색을 띠게 됐다. 그러나 이 역시 김대통령의 당선으로 설득력을 잃었다.
최근들어 ‘나라를 망친 대통령’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칠된 김전대통령이 정치재개 움직임을 보이면서 한나라당이 ‘3김 청산’과 함께 ‘후3김시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강동형기자 yunbin@
1999-08-1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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