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무원가족](2)-부자지간 박영복·박형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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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9-08-04 00:00
입력 1999-08-04 00:00
문화재청 박영복(朴永福·54)문화유산국장과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박형빈(朴亨彬·24)학예연구사는 두달 전만해도 종종 함께 출퇴근 했다.같은 집에 사는 데다 박 국장이 문화재연구소와 100여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유물관리부장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다.박 학예사가 평생직업으로 문화재를 택한 것도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어린 시절부터 놀이공간이 박물관이었다.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아버지는 공주박물관장으로 일했다.방학때면 아버지를 따라 발굴현장을 찾아다니기도 했다.그는 지금도 예산에서 부처님을 땅에 세우던 기억이 새롭다고 했다.예산 사면석불 발굴현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같은 집안 분위기는 자연스레 그를 사학에 관심을 갖게 했다.당초 동양사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대학에서 고고미술사학을공부했다.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지난해 4월 학예사로 특채됐다.

박 학예사는 주변에서 “참 많이 컸구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학예직이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 다 합쳐야 100명 안팎인 만큼 숫가락 개수까지는 몰라도 서로의 가족사항은 잘 아는 탓이다.그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대부분이 저를 알고 있어 몸조심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유적조사실은 20여년 전 아버지가 일했던 곳이다.

박 국장은 “지난 73년 지표조사 등을 담당했었다”며 “아들이 같은 일을한다니 묘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형빈이가 학교 다닐 때는 행정실무자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려 하지 않는 등 내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이제는 이해하는 눈치”라고덧붙였다.



박 학예사도 “지난 1년간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것을 많이 알게 됐다”면서 “모든 것을 한번 더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아버지의 말에 동의하듯 머리를 끄떡였다.

임태순기자 st
1999-08-0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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