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α’와 90년 ‘3黨통합’ 차이점
기자
수정 1999-07-21 00:00
입력 1999-07-21 00:00
정치성향과 이념의 측면에서 이질적인 여러 세력이 합당형식의 창당을 통해 한지붕 밑으로 들어앉는 모양새도 비슷하다.3당합당이 민주화와 군부세력의 물리적 통합이었다면 ‘2+α’는 보수와 개혁을 망라한 보혁연합과 지역연합을 염두에 둔 헤쳐모여식 결합이다.
그러나 3당합당이 미증유의 정치 실험으로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점과 비교하면 ‘2+α’가 갖는 심리적 충격의 강도는 다소 떨어진다.
3당합당은 지역주의를 이용한 정권재창출의 방편이었지만 ‘2+α’는 지역주의 극복에 비중이 두어지고 있는 점도 충격강도가 떨어지는 요인이다.
3당합당은 수혜자가 누가 될지 분명했지만 ‘2+α’는 불투명하다는 점도이채롭다.한 예로 ‘내년 4월 총선구도에서 1대1의 여야 맞대결 구도가 반드시 여권에 유리한 결과로 귀결되느냐’를 생각할 수 있다.단정하기 어렵다는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3당합당은 전격적인 합당선언으로 나왔으나 ‘2+α’는 구성원의 여론수렴형식을 거쳐 추진되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지금까지 드러난 구도로는 정계개편 추진세력으로서의 영남권이 배제된 점도 3당합당 당시와는 다르다.
차기를 맡을 강력한 카리스마의 부재(不在)도 3당합당 때와는 다르다.‘2+α’에서는 당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 같은 역할을 맡을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얼굴의 신선미’가 떨어진다는 비판과도 맥이 닿는다.
박찬구기자 ckpark@
1999-07-21 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