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시인 6번째 시집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수정 1999-06-07 00:00
입력 1999-06-07 00:00
시인 김용택은 섬진강을 일러 “누이 같은 강”이라고 했다.그렇다면 또 한 명의 섬진강 노래꾼 곽재구에게 섬진강은 무엇인가.그것은 바로 “설레이는 영혼”과 동의어다.아름답고 수줍고 가녀린 섬진강변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써야 할 시의 목소리를 들었다.등이 휘어지도록 삶이 버거운 것일지라도 ‘섬진강을 닮은’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한 곳이라는 것.그 믿음은 한 편의 시가 돼 우리의 지친 영혼을 어루만져 준다.“늦은 밤/구례구역 앞을 흐르는/섬진강변을 걸었습니다/착한 산마을들이/소울음빛 꿈을 꾸는 동안/지리산 능선을 걸어 내려온 별들이/하동으로 가는 물길 위에/제 몸을 눕혔습니다/오랫동안/세상은 살만한 것이라고/생각했습니다/억압과 고통 또한 어두운밤길과 같아서/날이 새면 봉숭아꽃 피는 마을/만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밤편지’중) 곽재구가 섬진강을 처음 만난 것은 1975년.그는 그 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강변에는 바람이 불고 희디흰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지요.그 꽃들을처음 보았을 때 나는 꽃의 이름 보다는 그것이 간직하고 있는 추억을 먼저생각했습니다” 눈감으면 바람결에 수북히 밀려오는 꽃향기,삽상한 바람,고운 물빛….그는 섬진강의 자연에 취해 시정(詩情)의 늪으로 사정없이 빨려들어 갔다.‘연화리 연작시’ 33편을 포함한 이 시집에는 그런 그리움과 기다림의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황토산 자락에 연분홍 첫사랑의 숨결을토해놓는”(‘배꽃’중) 배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강변 오두막에서 그는삐걱이는 나무계단을 밟고 찾아올 ‘당신’을 기다린다. 그런가하면 “한때사이비 혁명의 숨결을 닮았다”(‘큰눈 내리는 날’중)고 여겼던 눈을 바라보며 “삶이란 전쟁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정육면체의 얼음주머니를 굴리는일”(‘얼음주사위’중)과 같다는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이 시집에는 강변의 오두막집,집 앞의 나루,낡은 나룻배 등이 자주 등장한다.시인은 가끔 그 나룻배를 타고 강을 오르내리며 찾아오는 이들을 태워준다.그리고 그들로부터 세상이야기를 전해 듣는다.바람,안개,비,별 등도 시인에게는 하늘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음의 친구.그런 만큼 그의 시에는 ‘팬사이키즘’ 곧 범심론(凡心論)의 분위기가 감돈다.그는 올 연말 ‘포구기행’이란 산문집도 낼 예정이다.
김종면기자 jmkim@
1999-06-0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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