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著 ‘화가 이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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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9-04-16 00:00
입력 1999-04-16 00:00
천재적인 화가 이중섭의 삶은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처럼 철저하게 비극적이었다.유럽은 고흐의 예술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가난과 절망에 몰아넣어던 ‘죄의식’에서 ‘고흐 신화’를 만들었다.우리나라에도 가장 한국적인 화가중의 한 사람인 비운의 화가 ‘이중섭 신화’가 있다.

그 신화 속에 이중섭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다.지난 1월21일부터 3월9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이중섭 유작전’에 9만명이나 몰려,그의 작품이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이중섭 열풍 속에 그의 삶과 예술을 담은 책 ‘화가 이중섭’이 민음사에서 나왔다.어느 비극 소설보다 더 비극적인 삶을 살다 40세에 요절한 이중섭의 삶과 예술이 시인 고은의 탁월한 필치로 애절하게 그려져 있다.이 책은 지난 1973년 이중섭의 조카 이영진씨 등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고은씨가 쓴 최초의 이중섭 평전 ‘이중섭 그 예술과 생애’를 일부 보완,다시출판한 것이다.

식민지 시대였던 1916년 평남 평원군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순수하고따듯한 영혼의 소유자였다.어린이 같은 그의 순수함은 현실의 삶을살아가는데 어떤 힘도 되지 못했지만 가난과 병마 속에 고달프게 살았던 삶의 흔적들과 화가로서의 열정과 좌절은 ‘신화’가 되어 남아 있다.

그는 한국전쟁을 피해 일본에 가 있던 일본인 부인 마사코(결혼후 이남덕으로 개명)와 아이들이 그리워 밤이면 아내와 아이들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혼자 대화를 했다.첫아들을 잃었을 때에는 한밤중에 일어나 아들이 먹을 천도를 그려 놓았다.수도육군병원에서 그의 거식증을 정신질환이라고 하자 정신병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입원환자의 모습을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렸다.그러나 한밤중에 일어나 자기 작품은 가짜라며 불태우고 예술을한답시고 세상을 속였다고 자학하기도 했다.

그는 1956년 9월6일 적십자병원에서 죽었다.그의 시신은 무연고자로 분류되어 병원 영안실에서 3일간 방치됐다.침대에는 그동안 밀렸던 18만원의 입원비 계산서가 붙어 있었다.

그의 잔인하게 찢겨진 생애에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한 곳은 1951년에 살았던서귀포였다.그는 그 곳에서 대표작 ‘황소’를 비롯 ‘서귀포가 보이는 풍경‘ 등을 남겼다.그러나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그나마 본격적인 작품보다는 우편엽서나 담배갑 속의 은박지 등에 그린 작품이 많다.서귀포에는 그가 머물렀던 초가가 단장되고 ‘이중섭거리’가 만들어져 있다.

이창순 기자 c
1999-04-1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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