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DJ노믹스’ 1년/독일 질서자유주의/한국경제정책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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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9-04-16 00:00
입력 1999-04-16 00:00
지난 1년간 새 정부의 경제정책 색깔이 심심치 않게 도마에 올랐다.진보적인 성향의 학자나 노조측에서는 정부 정책이 “기업위주와 해고 만능의 미국식 신자유주의로 치우쳐 있다”고 비판했다.재벌측에서는 “복지를 내세우고 고용자제를 요청하는 것으로 봐서는 유럽식 복지주의로 흐르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최근 본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새 정부 정책사조의 본류는 미국과 영국식 신자유주의이지만 여기에 독일식 질서자유주의가 강하게 접목돼 새 정부의경제정책이나 ‘DJ노믹스’로 구체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정부 경제정책의 틀을 짠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진순(李鎭淳)원장은 “신 정부 정책의 구성요소를 보면 미국과 영국의 신자유주의가 60%,독일식 질서자유주의 요소가 40%정도”라고 밝혔다.노조나 재벌 양측이 서로 반론을펼 수 있는 부분이 새 정부 정책에는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영미식 신자유주의 가운데서도 미국보다는 영국의대처 전 총리의 신자유주의가 더 반영되어있다”고 말했다.복지정책에서 정부 정책의 실패를 고치려는 방향으로 선회한 영국이,성장위주 정책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면이 많기 때문이다.100여년 전부터 법과경제질서가 확립돼 자유방임적인 정책을 취하는 미국보다 영국 정책이 우리에게 보다 친근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현 정부가 특히 독일식 질서자유주의를 취한 대목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재벌의 내부거래 규제 등 독과점규제 ▲독일에서 처음 시작된 노·사·정 위원회의 도입 ▲실업자와 빈곤층에 대한 지원 ▲지난해 의도적인 경기부양에반대한 부분 ▲시민단체의 역할을 강조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정확히 독일식 질서자유주의를 답습한 것은아니다.서울대 안병직(安秉直)교수는 ▲재벌개혁에서 정부가 앞장 선 부분이나 ▲노조파업해결에 정부가 개입한 것 ▲노·사·정 위원회 등에서 노조의지나친 우대 등은 질서자유주의의 이념에 어긋난 것이라고 지적했다.안 교수는 “앞으로 정부는 인기를 다소 잃더라도 시장경제원칙에 더 충실하고 노조의 대우도 낮추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정부 관계자는 또 “새 정부 경제정책이 복지 부문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업자 지원을 제외하고는 국민연금 등의 경우 자신의 부담이 많아 재정지원이많은 유럽식 복지주의와는 다르다 ”고 밝혔다. 이상일기자 bruce@- 독일의 질서자유주의란 “기근의 와중에서도 쌀을 바닷속으로 버리는 일이 일어난다.독점이나 부분독점이 시장을 지배하는 경우 재고를 이런 식으로 폐기하는 것은 드문 일이아니다.” “자유방임하면 경쟁이 생기고 노동과 재화가 합리적으로 분배될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자유방임 정책은 ‘상호 결합해 경쟁을 배제하는자유’도 보장해주었다.” 독일의 질서자유주의(Order-Liberalism)는 이런 독점과 자유방임 경제의 문제점에서 출발한다.

질서자유주의는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학파의 지도자였던 발터 오이켄(Walter Eucken)이 주창한 사상이다.대공황과 나찌지배체제에서 오이켄은다음 두가지를 주목했다.첫째 이익단체 등 사적(私的)경제권력의 비대한 성장과 둘째 사적 경제권력의 압력으로 국가의 힘이 빈껍질이 되어가는 현상이다.따라서 그는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하되 독과점규제 등 시장질서 수립과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정부는 또 중소기업,노약자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질서자유주의는 2차대전후 독일(구 서독)경제정책의 줄기를 이루었다.

질서자유주의는 정부규제 축소와 가격기구 활성화 등에서는 신자유주의와공통된 면을 갖고 있다.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축소를 주장하는 점에서 저소득층의 보호장치를 강조하는 질서자유주의와 다르다.

- 새정부 경제철학 산실 한국경제정책연구회 신정부 경제정책 철학의 줄기를 잡은 것은 ‘낙성대연구소’를 무대로 활동한 ‘한국경제정책연구회’였다.서울대 안병직(安秉直.64.경제학)교수 주도로 지난 87년 사단법인 형태로 출범한 이 연구소는 원래는 한국근대경제사연구팀을 위한 장소였다.

여기에 안 교수가 회장,제자인 이진순(李鎭淳)당시 숭실대 교수(50.현 한국개발연구원장)가 간사로 한국경제정책연구회를 조직,낙성대연구소에서 회동했다.성장위주의 한국경제정책이벽에 부딪쳤다는 인식에서 새로운 한국경제의 정책 모델을 연구하자는 취지였다.

경제정책연구회는 안 교수 제자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들이 주축을 이루었지만 다른 학교 학자들도 가세했다.윤원배(尹源培) 당시 숙명여대교수(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와 김태동(金泰東)당시 성균관대교수(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외에 숭실대 조우현(曺尤鉉),경희대 장의태(張義泰),연세대 이제민(李濟民),방송통신대 박덕제(朴德濟),경북대 김석진(金石鎭),원주 상지대 황신준(黃愼俊)교수 등이 참여했다.관리로는 유일하게 이근경(李根京)당시 세제심의관(현 재정경제부 차관보)가 참여해 토론을 벌였다.새 정부 출범전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모였다.

새 정부의 브레인 역할을 한 ‘중경회(中經會)’의 회원이며 나중에 새 정부의 요직을 맡은 이진순,김태동,윤원배씨 외에 대부분의 경제정책연구회 회원들은 학문적 관심에서 모였을 뿐 정치적 연계가 없었다.일부 교수는 그후국민회의와 다른 노선에 서기도 했다.다만 이 KDI원장은 모임 초창기부터 연구성과를 당시 정치를떠나있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수시로 보고했다.

수년간 낙성대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뤄진 경제정책연구회의 활동이 DJ와 직접적인 연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그러나 그 성과가 새 정부의 경제정책과철학에 한 축을 형성하게 된 데는 이 원장의 역할이 있었다.

이상일기자
1999-04-16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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