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뒤 우리나라 국민의 글자살이는 큰 진전을 보여왔다.한자투성이의 글자살이에서 거의 완전한 한글전용의 글자살이로 바뀌었다.이것은 한글이 글자로서의 기능이 절대 우수한데다 광복 뒤 우리 겨레가 민족 자주정신과 민주정치를 쟁취하려는 욕망에 차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아울러 이는 세종의 한글창제 정신이기도 한데,한글은 이러한 정신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에서 자양분을 받으면서 자라왔다. 한편 1948년 국회는 ‘한글전용법’을 제정하면서 공용문서는 한글로 적도록 하되,다만 당분간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는 단서를 붙였다.이러한 단서가 붙은 것은 당시로서는 한글로만 쓰기에 아직 익숙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그 뒤 우리 민중의 한글전용 글자살이는 많이 진전되어 1970년 정부는 공용문서를 한글만으로 ‘가로쓰기’하되 표준말을 바르게 쓰도록 ‘대통령령’으로 규정하였다.이것은 역사의 진전에 발을 맞춘 매우 적절한 처사였다.이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그 글자살이를 한글전용으로 굳혀온 것이다.이것은 일본이나 중국이 흉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에서는 이러한 한글전용의 글자살이를 뒤로 돌려 한자를 ‘병기’하겠다고 하니 한마디로 말하면 이것은 역사의 나아가는 방향을 모르고서 그 진전의 도도한 흐름을 뒤에서 끌어당기려는 반역사적인 처사라고볼 수밖에 없다.너무나 심한 맹목적 글자정책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해괴망측한 일로는 도로표지판에조차 한자를 ‘병기’한다는 것이다.일본이나 중국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서란다.매우 어리석은 발상이다.관광객을 모셔오려면 관광상품을 잘 개발해야 하는 것이지 도로표지판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니 정말 유치한 발상이다.우리는 이미 도로표지판에 로마자를 병기하여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그런데 무엇이 모자라서다시 한자를 아울러 쓰겠다는 것인가? 도대체 어찌하자는 것인가? 또 그 돈은? 동양 세 나라가 한자를 쓰기 때문이라고 자랑삼아 떠들어댄다.그러나 이 세 나라의 한자 읽는 방법이 다르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한자로 적어놓으면 중국이나 일본사람은 우리말 소리로 읽지를 않는다.그러나 지금과 같이 로마자로 적어놓으면 우리말 소리를 바로 낼 수가 있다. 21세기를 향하여 뛰겠다던 정부의 발상이 기껏 이 정도라는데 정말 실망을금할 수 없다.한자는 정보화시대의 크나큰 걸림돌임을 왜 모르는가?
1999-02-11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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