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받은 ‘미국의 정신’/최철호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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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12-21 00:00
입력 1998-12-21 00:00
더는 도덕적 최고지도자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 그가 집무하는 건물 앞에 휘날리는 성조기는 무겁게만 느껴졌다.
미국은 지금 심각한 정신적인 혼란의 와중에 있어 보인다. 최고의 덕망과 인품을 지닌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대통령이 추한 성추문과 관련,탄핵을 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세계사를 만들어 낸다고 자칭하는 백악관 내에서 행한 추한 행동을 큰 잘못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는 실정이 더욱 그렇게 보이게 만든다.
가장 위대한 나라 국민들의 대표라고 자부하는 의회 지도자들 역시 같은 추잡한 성추문에 나동그라지고 무엇이 큰 죄이고 무엇이 작은 죄인지,대통령에게 적용될 때와 평민에게 적용될 때 다르게 나타나는 혼란도 커보인다.
클린턴 위증 논의가 한창일 때 언론들은 위증죄로 기소돼 교도소에 복역한 시민들을 상대로 토론을 시킨 적이 있다. 그들 모두 위증은 분명히 단죄돼야 할 죄라며 자신들에게 적용된 형벌을 감수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대통령에 대한 위증은 큰 죄가 아니라고 하는 논리는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목소리 높여 클린턴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같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 속에 의회 모든 의원들은 사분오열된 상태다.
행정부와 의회가 정돈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동안 국민들도 연일 반대 되는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서로 다른 주장을 쓴 피켓을 든 시위자들이 백악관 앞에서 연일 마주치고 있다.
‘토머스 클린턴 제퍼슨(?)’과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이란 이름을 적은 가십 만화는 지금의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 수작으로 평가됐다.
훌륭한 지도자가 도덕과 인품을 겸비해 나라를 다스려 오늘날 위대한 미국을 낳았다는 교육지표는 초등생들까지 클린턴 탄핵토론을 벌이면서 여지없이 망가지고 있다. 19일 하원의 탄핵은 분명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아니라 일그러져 가고 있는 미국의 정신을 탄핵한 것이다.
1998-12-2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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