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승려대회/종단 비상사태때 열리는 대규모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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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11-18 00:00
입력 1998-11-18 00:00
◎80년대 이후 대부분 종단 내분 있을때 열려

‘승려대회’는 산문중심으로 교구 단위의 스님들이 모여 중요사안을 의결하던 불교고유의 직접 민주주의방식의 조계종 최대의 군중 집회이다. 종헌 종법에는 규정돼 있지 않은 승려들의 총회로 모든 승려가 참여해 난상토론을 거쳐 현안을 만장일치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는 초법적인 효력과 구속력을 갖는다.

종단의 비상사태나 긴급사태시에 열리는 승려대회의 소집권자는 별도로 규정돼 있지 않아 누구나 소집할 수 있지만 종단의 원로회의 등 큰스님들이 동의하는 것이 관례이다.

지금까지 개최된 승려대회는 해방이후만 해도 7∼8차례지만 비교적 큰 규모의 것은 지난 83년의 해인사 승려대회를 비롯해 4차례다. 조계종 창종이후 첫 승려대회는 45년 9월로 기록된다. 38선이남의 승려 60여명이 참여,사찰령 및 31본사법 폐지와 독자적인 조선불교 교헌제정을 결의했다.

80년대이후 승려대회는 내분에서 비롯된 것이 많았다. 83년 9월에는 당시 황진경 총무원장의 파행적인 주지인사로 촉발된 신흥사 전·후임주지 세력간에 발생한 살인사건을 계기로 승려대회가 열려 결국 총무원 집행부가 퇴진하고 비상종단이 들어섰다.

또 86년 9월 해인사에서 열린 승려대회는 불교자주화를 대외적으로 천명한 집회. 2천여명의 참석자들은 불교관계 악법 즉각 철폐와 사찰 관광유원지화 중지,불교탄압 전면거부,10·27법난 해명 등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이끌어냈다.

89년에는 밀운스님을 중심으로 봉은사측 총무원이 통도사에서 대회를 개최했고,91년에는 종정자리를 놓고 성철지지파와 월산 지지파가 해인사와 통도사에서 승려대회를 갖고 총무원을 양분시켰다.

그리고 94년 4월에는 서의현 총무원장의 3선과 장기집권에 반대,범종추를 중심으로 조계사에서 승려대회를 개최,서원장을 퇴진시키고 개혁회의를 출범시킴으로써 승려대회의 ‘위력’을 재현하기도 했다.
1998-11-1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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