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론자의 고독(金在晟의 정가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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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11-17 00:00
입력 1998-11-17 00:00
지난 10일 오전 총재회담이 성사되기 2시간 전까지 朴총무의 저고리 안주머니에는 4통의 문건이 들어 있었다.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합의문, 거기다 국민회의가 첨삭을 가한 것,그것을 다시 이쪽에서 수정하고 그 수정본에다 국민회의가 가필을 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朴총무는 적어도 세 차례의 낭패를 경험했다.최초의 낭패는 10월2일 朴浚圭 국회의장의 중재로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난 양당 총무는 李會昌 총재의 국세청 대선자금 모금사건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하고 10월4일쯤 여야 총재회담을 성사시키기로 합의를 보고 있었다.그런데 바로 그 시간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대여 전면전을 선포했다.두번째는 11월4일.李총재는 이날 ‘국세청사건’에 대해 완곡한사과를 했다.총재회담을 전제로 한 여야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여기까지는 좋았는데 李총재의 그 다음 말이 문제였다.즉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에 대해 “우리당과 연관시키려고 고문조작을 벌이다 실패했는 데도 사과를 요구한 것은 거꾸로 가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여당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세번째는 11월9일.양당 총무가 경제청문회 등 5개항의 의제를 합의함에 따라 청와대 오찬회담이 발표됐다.그러나 李총재 주변의 척화파(斥和派)가 개입해 ‘표적사정’등 3개항의 추가를 요구해 회담은 무산되고,국가원수의 점심스케줄도 차질이 생겼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여야 협상이 “남북협상보다 더 힘들게 진행됐다””고 평했다.그렇다고 협상론자들이 짐을 완전히 벗은 것은 아니다.어렵사리 마련된 대화정국을 원만하게 이끌어 가는 것도 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이를 위해 여야는 피차 온건론의 입지를 넓혀주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金在晟 jskim@daehanmaeil.com>
1998-11-17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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