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이형기씨 시집 ‘절벽’/투병중 쓴 신작시 42편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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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10-29 00:00
입력 1998-10-29 00:00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일찍이 ‘낙화’라는 시를 통해 ‘사라짐의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 원로시인 이형기씨(65)가 새 시집 ‘절벽’(문학세계사)을 냈다. 이번 시집은 이씨가 지난 94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4년동안 투병생활을 하면서 애면글면 쓴 신작시 42편을 묶은 것.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시인의 강렬한 의지와 존재에 대한 성찰이 전편에 흐른다.

“내 가슴은 캄캄한 동굴이다/끝 닿지 않는 그 밑바닥에/섬뜩하게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다/…/고통처럼 아직은 살아 있는/생명의 몸부림/말이 되기전의 안타까운 손짓발짓이다/…/그리고 침묵의 해저로/가만히 가라앉고 싶다”(‘동굴’중) 시인에게 있어 소멸이란 삶의 막다른 경계이자 우주적 흐름 속에 자아를 던져 넣는 새로운 삶의 관문을 뜻한다.이러한 시인의 ‘소멸의 미학’은 매순간 삶의 모서리를 힘겹게 건너가는 우리에게 깊은 시적 울림을 남긴다.

이 시집엔 ‘새 발자국 고수레’‘앉은뱅이꽃’‘허무의 빛깔’‘미래를믿지 않는 바다’‘센양의 아침풍경’ 등의 작품이 담겼다.

시집 끝에는 시인의 시력(詩歷) 50년을 갈무리한 경구집 ‘불꽃 속의 싸락눈’이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1998-10-2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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