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사의 한국경제 충고/具本永 차장·정치팀(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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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10-21 00:00
입력 1998-10-21 00:00
그는 “한국 가구의 3분의 2가 1년전보다 경제형편이 어려워졌다”며 최근 여론조사를 인용했다.이어 “여론조사와 통계수치로 절실한 경제불안과 사회적 고통을 어떻게 다 담아내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판 경제위기의 원인에 관해선 끝내 직접적 언급은 피했다. 직업외교관으로서 몸에 밴 조심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얘기는 우회적으로라도 했다.“한국경제의 과제는 신속한 구조조정이고,그 요체는 투명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는 일”이라고 충고했다.나아가 “한국적 발전모델은 과거엔 잘 통했지만 글로벌체제에서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외교적 수사로 에둘러 표현했지만 한국사회 전반의 투명성과 효율성 결핍을 지적한 셈이다.민간과 공공부문에 만연하는 불합리와 적당주의를 제거하지 않으면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적응할 수 없다는 ‘경고’였다.
물론 보스워스대사와 IMF 등 서방선진권이 요구하는 ‘글로벌기준’이 반드시 금과옥조는 아닐 것이다.국제 금융자본의 약육강식 논리가 숨어있을 수도 있는 탓이다.
다만 그도 金大中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은 긍정 평가했다.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통일부 등 관련 부처에서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교한 실행프로그램을 제시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오히려 개발연대식 주먹구구가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
금강산관광을 위한 현대측의 외국 유람선 용선건이 단적인 사례다.지난 25일 배를 빌린 뒤 하루 15만달러의 외화가 낭비되고 있는 탓이다.‘알을 까기도 전에 병아리를 세는’ 무모한 기업경영과 이를 방치한 관료들의 무신경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일터에서 돌아온 농부는 뚫어진 창호지문에서 스며드는 찬바람을 버선으로 막았다.아침이 되자 다시 그 버선을 빼 신고 일하러 나갔다”
한 일본인은 한국인들의 무신경과 적당주의를 이처럼 풍자한 여행기를 남겼다.과거 정권의 정책 실패가 현 경제위기의 주범이라면 정경유착과 적당주의 등 우리 사회 곳곳의 부조리가 그 종범이 아닐까 싶다.
1998-10-21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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