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제대로 하기(張潤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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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9-18 00:00
입력 1998-09-18 00:00
여야 물밑대화로 풀릴것 같이 보이던 경색정국이 李基澤 한나라당 전 총재대행의 검찰 소환문제를 둘러싸고 더 한층 악화되고 있다.李 전 총재대행 자신의 말처럼 20대에 4·19 혁명을 주도했고 야당총재를 두번씩이나 역임한 거물급 정치인인 그의 ‘버티기’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국민들은 우려의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자칫 여야간 전면전으로 번지지나 않을까 해서다.여당은 국회정상화와 비리 정치인 수사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원칙을 거듭 확인하고 있고,한나라당은 ‘의원직 총사퇴’ 등 결사항쟁을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 같아 저어되는 바 없지 않으나, 최근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한나라당 의원들의 항의시위를 보느라면 마음이 착잡하다.주먹을 움켜 쥐고 구호를 외치는 의원들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절친하거나 서로 알고 지내는 얼굴들이 많기 때문이다.그 엄혹했던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에 뜻을 같이 했던 얼굴들 말이다.

○경탄과 안타까움 겹쳐

이른바 ‘문민 정부’를 거쳐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오늘날,그들은 왜 아직도 주먹을 쥐고 구호를 외쳐야 하는가.굳이 그 때와 다른 점을 들자면, 재야 운동권 시절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국회의원 금배지가 그들의 옷깃에서 번쩍이고 있다는 정도일까? 金泳三 대통령 집권 시절,오랜 재야 생활을 청산하고 여당인 민자당에 들어가 금배지를 단 의원들은 그렇다 치자. 그들은 한때나마 집권여당 의원으로 끝발을 날렸을 터이니까.집권당이 정권을 잃으면 야당이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야당이나 재야에서 막차를 타고 한나라당에 들어갔다가 다시 야당 정치인이 된 친지들을 보면 생각이 더욱 착잡하다. 일종의 경탄과 오지랖 넓은 안타까움이 한데 뒤엉킨 어떤 감정이라고나 할까?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3김체제’가 아직도 엄연한 정치현실임에도 끝까지 ‘3김청산’을 부르짖는 그들의 초지일관이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면, 그들이 그동안 쌓아온 경륜을 집권여당 의원으로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그러나 누가 알 것인가.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오랫동안 재야에서 투쟁을 해온 활동가들에게는 ‘대여 투쟁’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그 분야에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그러나 역대 정권에 걸쳐 여권에서만 맴돌다가 갑자기 야당이 된 정치인들에게는 대여 투쟁이라는 게 무척 낯설고 어색한 듯 하다.하지만 투쟁이라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그와 관련해서 李會昌 총재는 선언적인 발언을 했다.“명예를 잃고 사느니 명예를 지키며 죽겠다”고.지난 독재정권 시절 운동가요 ‘뿌리파’를 연상케 한다.‘무릎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는 李총재가 ‘뿌리파’를 배웠을 리는 없고,그렇다면 그는 타고난 야당 지도자다.

○정예 야당만이 집권 가능

그러나 이제는 야당도 달라져야 한다.당장은 투쟁도 중요하겠지만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국민의 지지가 없는데 무엇에 기대어 투쟁을 할 수 있겠는가.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길은 공명정대한 명분과 정책대결뿐이다.정책대결에 관한 한 오랫동안 집권을 해왔으니 인적 자원은 충분할 것이다.탈당 의원들의 ‘영정’이나 태울 게 아니라,야당을 할 각오가 돼있는 사람들만으로 당을 재편해야 한다.정예 야당만이 집권을 꿈꿀 수 있다.<논설고문 yhc@seoul.co.kr>
1998-09-1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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