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아한글’ 정품사용 흐지부지/불법복제품 여전히 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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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8-25 00:00
입력 1998-08-25 00:00
지난 6월 있었던 ‘한글과 컴퓨터’사의 한글 개발 포기 파동 이후에도 불법 복제 컴퓨터 프로그램이 여전히 대량으로 나돌고 있다.
21일 상오 11시30분 서울 지하철 4호선 용산역.전자상가로 이어진 구름다리를 따라 어깨에 가방을 맨 10대 대여섯명이 무언가 팔려는 듯 서성대고 있었다.
행인들이 삼삼오오 지나가자 이들은 준비한 유인물 서너장을 통로벽에 붙인 뒤 “백업 시디(back up CD) 만원”하고 외쳤다.그러자 삽시간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이들이 파는 불법복제 CD의 종류는 10여가지.‘UTIL’ ‘전문 PRO’ ‘그래픽’ ‘CAD’ 등의 이름이 붙은 전문 분야의 복제품도 있었다.‘한글 윈도우 98’ ‘훈민정음 98’ 등 10여개의 프로그램이 복제된 것도 있었다.정품가격이 수십만원인 컴퓨터 프로그램을 담은 만원짜리 CD에 행인들은 절로 발길이 끌리는 듯했다.
‘고객’들은 대부분은 학생들이었고 더러 직장인도 눈에 띄었다.“싸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는 李모군(25·D대 무역학과 3년)은 2장을 사갔다.
판매원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게릴라식’으로 판다.100여장만 들고 행인들이 많은 길목에서 기습적으로 팔고 사라진다.다 팔면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서 물건을 갖고 다시 나타난다.손님이 요구하면 구입한 지 며칠 지났더라도 다른 것으로 교환해 주는 등 최소한의 서비스도 제공한다.
컴퓨터 부품을 판매하는 매장도 마찬가지였다.상인들은 ‘정품사용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정품을 쓰자는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었다.그러나 잠시 뿐이었다.손님들을 끌기 위해 컴퓨터를 사는 사람들에게 예전처럼 불법으로 프로그램을 설치해 주고 있었다.‘한글’ 개발 포기 파동도 잊은 듯 했다.
S컴퓨터 점원 金모씨(35)는 “한컴 사태 이후 한동안 정품을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흐지부지됐다”면서 “손님들은 프로그램을 설치해 주는 매장으로 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한컴’ 金廷修씨(30·여)는 “한컴 사태 이후 단속이 강화되기도 했지만한계가 있다”면서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복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다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 적발된 업체도 95년 43개사,96년 151개사에서 지난해에는 720개사로 급증했다.한컴측은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의 복제품 점유율이 80%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朴峻奭 기자 pjs@seoul.co.kr>
1998-08-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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