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파산/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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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8-25 00:00
입력 1998-08-25 00:00
“세계은행(IBRD)을 해체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는 유엔에 흡수해야 한다.해당 국민이 피해를 입지 않는 국가파산 선언도 가능해져야 한다”

국제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과 우리신학연구소(소장 김항섭)가 공동주최한 국제포럼(24∼29일 서강대 다산관·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제기된 주장이다. ‘아시아 경제 위기와 교회의 역할:IMF,인권과 교회’란 주제로 열리고 있는 이 포럼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동티모르 인권운동가 호세 라모스 호르타를 비롯,국내외 진보적 종교·경제학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 포럼에서 마이클 시겔 신부(오스트레일리아 신언회)는 국가파산 선언의 필요성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국가파산 선언이 받아들여져 채무국은 물론 채권국도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그 이유는 필리핀의 경우가 보여준다.마르코스가 집권했을때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였다.그러나 그가 물러났을 때는 방글라데시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로 전락했다.국민들에게는 270억 달러의 외채를 남겼다.마르코스가 외국에서 빌린 돈은 정부 선전 사업과 반란군 진압을 위한 군사 지출에 주로 쓰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외채를 갚아야 할 의무는 국민들에게 지워졌다.나라를 가난과 외채로 망쳐 놓은 부패한 독재정권을 몰아낸 뒤 수립된 새로운 정부가 파산을 선언할 수 있다면 채권국들도 마르코스 정부 같은 곳에 계속 돈을 빌려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게 시겔 신부의 주장이다.

다른 참석자들도 외채탕감 주장과 함께 국제금융기구 및 그 정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아시아 경제위기는 국내정책의 문제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금융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IMF의 결정은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함에도 불구하고 그 결정과정에 투명성이 결여돼 있다”“WTO체제로는 21세기를 평화롭게 이끌수 없다”는 등.

마침 외신은 “인도네시아에 제공된 세계은행 자금 20∼30%를 인도네시아 관료와 정치인들이 가로챘다”고 보도하고 있다.프랑스 르 몽드지는 22일 사설을 통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재정위기 수습을 위한 경제안전보장이사회의 구성을 촉구했다.세계경제 질서 전반의 개혁을 요구하는 진보적인 학자들의 주장은 아직 그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 경청해야 할 듯싶다.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세계화의 결과가 전 지구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음을 이 주장들은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8-08-2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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