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로마자 표기법 공청회/“영문표기 발음대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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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8-10 00:00
입력 1998-08-10 00:00
박찬호와 박세리가 미국 프로야구와 프로골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두사람의 성은 똑같이 박씨지만 미국인들은 ‘찬호팍’,‘세리팩’으로 부른다.
박찬호의 박은 PARK,박세리의 박은 PAK으로 표기돼 다르게 발음되기 때문이다. ‘박’이 ‘팍’,‘팩’으로 둔갑하는 것은 한글의 로마자표기의 중요성을 대변해주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어 로마자표기학회(회장 김복문)는 지난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어 로마자표기법’ 공청회를 개최,눈길을 끌었다.
공청회에서 로마자표기학회는 김회장이 개발한 ‘영어발음기준 모의발음부호법 표기방식’을 소개하면서 김충배 고려대 교수,류건호 충북대 컴퓨터과학과 교수,이정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전 기획관리본부장 등 유관인사의 의견을 청취했다.
김회장은 주제발표에서 “21개나 되는 한글의 모음을 5개밖에 되지 않는 이탈리아어 발음기준으로 수용,표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면서 “영어가 국제어로 통용되고 있는 만큼 영어를 기준으로 한 새로운 표기법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회장이 창안한 모의 발음부호법 표기방식은 여러가지로 발음되는 영어 철자 가운데 항상 같은 발음을 내는 표기법을 찾아 이를 발음부호처럼 사용하는 것. 이에 따르면 ‘아’는 ‘AH’,‘어’는 ‘UR’,‘오’는 ‘OH’(받침이 있을 때는 H 생략),‘이’는 ‘EE(받침이 있을 때는 I)’로 된다. ‘리→이’처럼 두음법칙이 될 경우 앞에 ‘Y’를 붙인다.
이를 성씨에 적용하면 박은 Park이나 Pak가 아닌 Bahk이 되고 강은 Gahng,최는 Chweh가 돼 ‘갱’(Gang),‘캉’(Kang) 또는 ‘초이’(Choi)라는 이음(異音)이 나오지 않게 된다.
실제 김회장이 고안한 모의 발음부호방식은 음가 반영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의 발음부호방식과 현재 정부에서 쓰고 있는 안,국어연구원이 지난해 마련한 개정시안을 비교조사한 결과 모의 발음부호방식은 500점 만점에 439.7점이나 돼 225점인 정부안,172.3점인 개정시안을 월등히 앞질렀다.
김회장은 이에 따라 영문표기를 의도한 발음대로 읽어주지 못하는 현행 체제는 하루빨리 모의발음부호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제발표가 끝난 뒤 가진 토론에서 류건호 교수 등 대부분의 패널리스트들은 동대문이 ‘통대문’이 되고 을지로가 ‘을차이로우’가 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사용자 측면에서는 가장 합당한 대안이라고 동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고려대 김충배 교수는 발음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부호를 많이 쓰는 것은 언어낭비라며 이러한 약점이 연구,보완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任泰淳 기자 stslim@seoul.co.kr>
1998-08-1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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