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범 吳씨 ‘YS퇴임후 강행’ 결심/金賢哲씨 납치미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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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6-17 00:00
입력 1998-06-17 00:00
金賢哲씨 납치 사건의 주범 吳順烈씨는 지난 1월 초 범행을 결심했다.범행 시기는 金泳三 전 대통령이 퇴임하는 2월 말 이후로 생각해 두었다.2월 초吳씨는 ‘김영삼정권의 실정에 대해 죽음으로써 국가와 민족앞에 사죄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뒤 100부를 복사해 부인에게 맡겼다.
3월이 오자 吳씨는 본격적인 범행 준비를 시작했다.힘이 센 賢哲씨의 운전기사를 떼어놓기 위해서는 공범을 여러 명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그는 인천과 서울 등지의 다방을 드나들면서 우연히 알게된 李起本씨와 임원택씨,김진구씨 등 30∼40대 남자 4명을 끌어들였다.
吳씨 등은 기회있을 때 마다 인천 주안동 V여관에 모여 치밀한 ‘작전’을 짰다.운전기사는 어떻게 유인할 지,賢哲씨 옆에는 누가 앉을 지 등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이와 함께 吳씨는 4월 중순 임씨에게 10만원을 주며 청계천에서 다이너마이트를 사오게 하는 한편,가스총과 전자충격기는 직접신문광고를 보고 구입했다.
같은 기간,吳씨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한편으로는 주 2∼3차례씩 서울 구기동 賢哲씨 집에 찾아가 면담을 시도했다.그러나 굳게 닫힌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결심을 굳힌 吳씨는 공범들과 마지막 ‘예행연습’을 가진 뒤 지난 5일 상오 9시쯤 범행 예정지인 구기동 등산로에 집결하기로 했다.그러나 공범중 김진구씨가 나오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나흘 뒤 같은 시각 재차 범행을 시도했으나 이번에는 임원택씨가 불참했다.
14일 하오 7시 吳씨는 공범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내일은 차질 없도록 하라”고 신신 당부했다.
15일 상오 9시 吳씨 등 일당은 구기동 범행장소에 집결했다.임씨는 범행에 쓸 쏘나타Ⅲ 차량을 끌고 왔다.상오 9시40분쯤 賢哲씨가 탄 차량이 다가오자 이들은 각자의 역할 대로 납치를 시도했으나 결국 賢哲씨가 도주하는 바람에 납치는 실패로 끝났다.
범행에 실패한 吳씨는 賢哲씨의 차를 국립환경연구원 앞에 버린뒤 전철과택시를 번갈아 타고 낮 12시30분쯤 인천 V여관에 도착했다.얼마후 李起本씨등 공범 4명 전원이 합류,대책을 논의한 끝에 잠적키로 하고 하오 6시쯤을 여관을 나와 헤어졌다.<金相淵 기자 carlos@seoul.co.kr>
◎주범 吳順烈씨 문답/“납치의도 없어… 얘기만 하려 했다”
金賢哲씨 납치 미수 사건의 주범 吳順烈씨(54)는 16일 상오 서울 서대문경찰서로 압송된 뒤 “이렇게까지 큰 일이 될 줄은 몰랐다.소란을 피워 죄송하고 처벌을 받겠다”고 심정을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
왜 賢哲씨를 납치하려 했나.
▲납치가 아니다.조용히 얘기만 하려고 했다.
공범들과의 관계는.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다.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고 다방에서 차를 마시다 만났다.공범인 金진구와는 지난 92년 대선 당시 ….
공범들을 어떻게 모았나.
▲큰 범죄를 모의한 게 아니었다.사건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2억5천만원을 YS측에 선거운동 자금으로 줬다는데.
▲87년 집 한채 팔고 92년 슈퍼마켓을 팔았다.
賢哲씨가 당신을 모른다고 말했다는데.
▲(웃으면서)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집을 나와 한달동안 여관에서 범행을 모의했다는데.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이 안난다.눈물로 보냈다.야당생활을 피눈물로 보냈는데….<李志運 기자 jj@seoul.co.kr>
1998-06-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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