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깬 1개그룹 어디냐”촉각/대기업 빅딜 급피치해당기업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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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6-17 00:00
입력 1998-06-17 00:00
‘빅딜(대기업간 사업교환)’을 누가 거부했을까.
金大中 대통령이 16일 “3개 기업 중 1개 기업이 빅딜을 약속했다가 번복했다”고 말한 것과 관련,현대 LG 삼성 등 3개 그룹은 똑같이 “우리는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들 그룹은 빅딜논의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아 총수들 차원에서 깊숙한 논의가 있었음이 입증됐다.
‘약속을 깬’ 그룹으로는 1차적으로 LG가 지목된다. 북한으로 소 떼를 몰고 간 왕회장(鄭周永 명예그그룹 회장)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말이 있다. 삼성자동차를 받아봤자 시너지 효과보다 중복투자의 비효율성만 드러난다는 논리에서다. 가장 설득력이 있다. 현대는 그동안 빅딜과 관련,“요청받은 적도 검토한 적도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으나 이날은 빅딜 추진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룹 핵심부에서는 빅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보안을 유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는 이날 鄭 명예회장을 비롯 鄭夢九·夢憲 공동회장이 모두 방북 중이어서 중대한 사안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그러나 “그동안 언론에 거론된 석유화학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현대는 약속을 깬 그룹으로 LG를 지목했으나 막판에는 현대가 판을 깬 것으로 전해졌다.
LG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얘기도 있다. 반도체 분야를 삼성으로 주는 데 대해 LG는 미국의 반도체 업체와 합작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로부터 석유화학을 받는 것도 ‘배추에 무를 접목시키려는 생각’이라며 못마땅해 했다. 석유화학이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라는 논리였다. LG는 이날 ‘삼각 빅딜’을 모르고,대상도 아니기 때문에 거절할 것도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애초에 金重權 대통령 비서실장이 1개 그룹이 거부하다가 마침내 빅딜에 승복했다는 언급이 나왔을 때도 LG가 문제의 그룹으로 지목됐었다. 그룹 관계자는 “설령 빅딜이 추진되더라도 기업간 합의와 자율에 따라 이뤄져야지 인위적이거나 강제적인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빅딜의 ‘최대 수혜자’로 여겨지는 삼성은 정치권에서 문제제기를 한 만큼 어떤 기업이 거부했는지도 정치권에서 확인해야 할 사항이라는 반응을 보였다.‘삼각 빅딜’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거절할 이유가 있느냐고 느긋하는 모습이었다. 3각 빅딜안대로 부실기업(삼성자동차)을 주고 알짜배기(LG반도체)를 받으면 삼성으로선 꿩먹고 알먹는 격이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나라가 어려우니 빅딜로 돌파구를 찾아야 되지 않겠느냐며 협조를 요청해와 정부방침에 협조하겠다는 뜻을전했다”면서 “그러나 그같은 원론적인 언급이 구체적인 사업교환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원론적인 차원에서 빅딜의 필요성이 공감했다는 대목으로 삼성이 빅딜에 긍정적이었음을 반증해 주는 언급이 아닐 수 없다.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와 LG가 모두 거절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양쪽 다 득보다 실이 많고 인위적인 빅딜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기 때문이다. 삼성이 거절했다는 설도 나돈다. 李健熙 회장이 “자동차만은 안된다”고 화를 냈다는 얘기가 있다.
한편에선 金 대통령이 ‘1개 기업’이라고 말함으로써 책임공방을 통해 빅딜을 유도하려는 고단위 처방이라는 관측도 있다. 현재로선 1차에 반발했다가 승복한 그룹은 LG, ‘약속을 깬 그룹’이 현대라는게 정설이다.
대우와 SK그룹은 빅딜 논의에서 한발 물러선 양상이다. 대우그룹은 빅딜 대상기업이 없으며 이미 밝힌 대로 계열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SK 관계자도 “빅딜의 대상이 될만한 계열사라면 과잉·중복투자되고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는 사업부문이어야 하는 데 그런 계열사가 없다”고 언급했다.<白汶一 기자 mip@seoul.co.kr>
1998-06-1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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