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문화 개방 이르다” 崔長根씨 기고 반론/金箕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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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5-26 00:00
입력 1998-05-26 00:00
金大中 대통령이 일본문화를 막지 않겠다 했을 때 나는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우선 입으로는 일본문화를 막아야 한다면서도 행동으로는 그것을 앞장서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위선이 싫었고 다음으로는 막아야 한다는 이유가 개운치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론 “문제없다” 공감
대개들 언젠가는 개방이 불가피하겠지만 아직은 이르다고 했다.벌써 53년째 듣는 이유였다.도대체 언제 그 “아직”의 끝이 올까.金대통령은 그 끝을 시사한 것이다.
그런데 5월21일 서울신문 15면에는 “일본문화 개방 서두르지 말자”는 崔長根 박사의 글이 실렸다.역시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그 이유에 아직도 설득력이 있을까.
崔박사는 일본문화에 대한 개방이 적어도 문화적인 면에서는 별문제가 없다고 지적한다.그러나 경제적인 면에서는 사정이 다르다고 말한다.일본문화에 대한 개방은 일본의 문화상품에 대한 개방을 뜻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생존권과 관계되는 현실적인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마지막으로,崔박사는 문화개방을 외교 카드로 써서 국익을 챙기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댈 수 있는 이유가 이것뿐이라면 崔박사의 “아직”론에는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우선 저질문화는 들어와 봤댔자 별문제가 없지만 “문화상품”이 들어오면 일본에 예속됨을 뜻한다니 무슨 말인가.문화상품은 문화와 같은 뜻이다.문화적 내용이 담긴 상품을 뜻하니까 어느 것이 들어오든 차이가 없다.그런데 왜 하나는 괜찮지만 다른 하나는 안 된다는 것인가.
○생존권론 설득력 없어
또 만약 일본문화의 유입이 우리 생존권을 위협할 정도라면서 그것을 외교상의 카드로 써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만약 문화개방이 외교관에게 노름꾼의 카드와 같은 것이라면 언제 써도 무방한 것이다.그런데 만약 외교관이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개방을 다른 국익을 얻기 위해 지금 당장 써 버린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세상에 생존권보다 더 중요한 국익이 어디있을까.
○문화상품 이미 보편화
“일본문화 개방 서두르지 말자”는 崔박사의 “아직”론은53년간 들어온 여느 “아직”론과 마찬가지로 개운치 않은 이유밖에 대지 못한 셈이다.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개운치 않은 이유밖에 댈 수가 없다면 이제 차라리 “아직”론을 버리는 것이 어떨까.
일본문화가 들어오면 그것에 매료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문화가 일본문화에 동화되는 것만은 아니다.崔박사도 이런 문화적인 면에서는 이의가 없다.
○문호 열고 경쟁력 갖춰야
중요한 점은 이런 문화적 개방의 비문화적인 면이다.그 비문화적인 면은 오늘날의 달라진 양국관계를 생각해 보면 분명해진다.일본은 한국의 주요 무역상대국이다.하루에도 수십 대의 비행기가 한일간에 무수한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일본의 “문화상품”은 저질이든 아니든 이미 한국사회의 곳곳에 들어와 있다.반대로 한국의 문화상품도 일본사회의 곳곳에 들어가 있다.일본문화를 막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현실을 현실로서 인정함을 뜻한다.
물론 개방하면 당분간은 일본문화상품이 한국문화상품보다 경쟁에서 우월할지도 모른다.그렇다고 그것을 막기만 한다면 언제 그것을 제압할 힘을 기를 수 있겠는가.이제는 문화의 문호도 활짝 열어야 한다.그리고 당당하게 겨뤄야 한다.중요한 것은 개방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다.<加 메모리얼대 교수·교육철학 중앙대 특임교수로 임시 귀국>
1998-05-2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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