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것/최혜실 KAIST 교수·국문학(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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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4-27 00:00
입력 1998-04-27 00:00
그러나 이런 상황이 몇해 지속되면서 나는 하나의 의문을 품게 되었다.나는 컴퓨터를 발명하거나 고치는 전문가가 아니다.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사용하기에 편한 도구가 되어야 하며,그렇지 않은 컴퓨터에 잘못이 있는 것이다.인간의 의사소통 체계를 보라.인간은 맞춤법이 틀려도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고 은유적인 표현을 써도 상황맥락에서그 정확한 의미를 인식할 수있다.그럼에도 이 기계는 언어의 다양한 편차를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다.내가 컴퓨터에게 느낀 두려움은 열등감이 아니라 인간의 의사소통 체계와 다른 데서 오는 ‘낯섬’이었던 것이다.
내가 이 깡통같은 기계에 분노를 터뜨린 지 몇년 되지 않아서 아이콘 방식의 프로그램이 컴퓨터 시장을 석권했다.적당하게 이곳저곳 열어보고 그때마다 친절하게 나타나는 지침들을 따라가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식,시행착오를 해도 시간이 걸릴 뿐이지 기계작동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하는 상황으로까지는 가지 않는 방식,인간을 배려하는 이 프로그램에 미흡하나마 어떤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1998-04-2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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