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라고 밝히기 부끄러워…/의정부 지원 비리로 주위 시선 따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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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3-05 00:00
입력 1998-03-05 00:00
서울고등법원 K모 판사는 요즘 사람이 많은 곳에만 가면 주위를 의식하는 버릇이 생겼다.의정부 지원 판사들의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게 된 때문이다.
예전에는 지하철에서 먼저 내리는 동료들에게 “어이 김판사 잘 가”“이판사 내일 보세”라며 승객들에게 은근히 신분을 과시하기도 했지만,요즘에는 ‘판사’라는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주위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볼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단골 식당이나 술집에 갈 때도 마찬가지다.주인이 말끝마다 “판사님” 소리를 붙여주는 맛에 일부러 단골 집을 찾았지만,요즘은 행여 다른 손님들의 시선을 끌까봐 호칭을 붙이지 말도록 당부했다.
가끔 택시로 출퇴근 하는 서울지방법원의 L모 판사도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전에는 법원으로 가자는 말에 택시 기사가 “혹시 판사님이세요”라고 물으면 저절로 어깨가 으쓱했었다.그러나 요즘은 존경스런 눈빛은 커녕 괜한 시비가 생길까봐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서울지법 K모 판사는 동창회나 친구 모임 등에 참석하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짖궂은 친구들이 “오늘 계산은 돈 많이 버는 자네가 하지”라며 놀리는게 농담같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전에는 겸손하려고 신분 노출을 삼갔지만 요즘에는 정말 판사라는 말을 꺼내기가 두려울 정도”라고 씁쓸해했다.<김상연 기자>
1998-03-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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