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하되 아기는 안낳겠다니(박갑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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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1-24 00:00
입력 1998-01-24 00:00
결혼은 했으되 아기는 못낳는 경우가 세상에는 적지않다.남녀구실은 멀쩡하게 하는데도 그러는 수가 있는가하면 아예 못낳게 돼 있는 사례도 없지않다.환관부부 따위가 그렇다.거세하여 ‘남성’을 잃은 것이 환관이지만 돈과 권세를 가진덕에 장가들 수는 있었다.아내를 ‘사는’것이었으리라. 하지만 그아내의 은결든 고규생활은 오죽 답답했겠는가.작자미상의 기관록에는 참의 홍원섭이 안산이생과 과거공부했을때 얘기가 쓰여있다.홍공이 외출한 사이 이생은 앞집 담장틈으로 종이쪽지가 나오는걸 받아본다.간절한 사연인즉“이몸은 환관의 아내로 30년가까이 음양을 몰라 평생의 한이라오.오늘밤 담장을 넘어오시오”.이튿날 이생은 이사실을 환관에게 발쇠섰고 그날저녁 그부인은 목매죽는다.
혼인도 했고 능력도 있으면서 아내를 가까이하지 않음으로써 아기를 못갖는 가시버시도 있다.<지봉유설>(어언부)은 양나라 소찰란 사람의 예를 든다.그는 몇발짝 떨어져 아내의 냄새만을 맡았다던가.우리나라에서도 조선예종임금아들 제안대군은 “여자음문은 더럽다”면서 아름다운 그아내를 멀리했다.한명회의 손자 한경기도 그비슷한 사람.그는 마음을 닦는답시고 홀로앉아 아내와 말을 나눈일도 없었다니 어찌 아기가 있을일인가(<패관잡기><지봉유설><용재총화> 등).
결혼을 하고서도 아기를 원치 않을바에야 차라리 고려때 곽여같이 평생 결혼않는게 나을지 모른다.그는 여색을 멀리한건 아니었다.홍주의 수령이었을때는 그곳 기생과 함께였고 나중에는 계집종을 가까이하고 있으니 말이다(<고려사>97곽상).즐기긴하되 가정은 갖기싫은 ‘무자식상팔자’주의자였다고 하겠다.조선말기 화가 장승업도 ‘하룻밤만 지낸 혼인생활’말고는 평생 가정을 갖지않은 것으로 전한다(<일사유사>)
아기를 갖기싫은 이유로는 교육비에 일과의 양립의 어려움 등을 든다.남녀의정은 나누되 책임은 지기싫다는 편의주의이다.곽여와 비긴다면 어느쪽이 나은걸까.어쨌거나 사람으로서의 올바른 자세는 아니라 하겠는데.<칼럼니스트>
1998-01-2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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