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악순환 촉발… 신용도 왜 추락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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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12-24 00:00
입력 1997-12-24 00:00
수출이 잘되고 있는데도 무디스사와 S&P사 등 미국의 국제적인 신용 평가 기관들은 왜 우리 나라의 국가 신용 등급을 자꾸 떨어뜨릴까.
이들 신용평가기관들은 예년에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같은 연도에는 조정하는 일이 없었다.그러나 올들어서는 연초부터 23일에 이르기까지 좀 심하게 표현하면 심심하면 신용등급을 낮춤으로써 외환위기를 촉발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외환당국이나 민간 업계에서도 이에 대해 액면 그대로 믿기가 이상할 정도로 다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분위기다.국제 금융시장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국제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 조정은 국내 실상을 정확히 들여다볼 수가 없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여부에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외환당국이나 전문가들은 그러나 신용등급 하락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하다.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꼽는다.
우리나라의 외환수급 상황이 불안한 점이 첫째 요인이라는 분석이다.외환당국 관계자는 “국제적인 신용평가기관들은 우리나라의 단기외채가 많고,외환 보유고가 적은 점 등 외환수급 상황이 불안한 점을 들며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우리나라의 총외채는 1천2백50억달러이며 이 가운데 단기외채는 절반이 훨씬 넘는 6백70억∼6백80억달러에 이른다.단기외채 가운데 금융기관 부채는 2백80억달러에 이른다.
특히 단기외채에는 국내기업들의 부채는 포함돼 있지 않아 실제로 갚아야 할 규모는 이보다 훨씬 커질 상황이다.당국은 국내기업의 해외부채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최근에야 이에 대한 실사를 하고 있다.
또 다른 요인은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 프로그램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에겐 부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LG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개혁이 IMF 프로그램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정부가 부실 금융기관에 출자하기로 하는 등 개입하고 있는 점이 신용등급을 떨어뜨리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지적했다.즉 IMF는 부실금융기관은 즉각적인 정리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와 달리 종금사에 대해서는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으나 은행에 대해서는 출자를 하는 등 되도록 살려보려는 조치가 부실 금융기관은 하루빨리 정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IMF 입장과 상반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이같은 조치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문제가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물론 의도적으로 신용등급을 낮췄다고 해석하지는 않지만 한 달새 몇 차례나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라며 “국제금융시장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도 “달러화 부족에 따른 외채 상환능력에 대한 의문으로 신용도가 추락할 수 밖에 없지만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뒷북을 치는것 같다”고 지적했다.올 상반기까지만해도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는데 신중을 기했던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과감하게 신용등급을 낮추고 있는 것은 다소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다 정확히 평가를 했더라면 외환위기가 비롯되기 이전에 미리 상황을 예측해서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어야 옳았다는 얘기다.<오승호 기자>
1997-12-2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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