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딸’ 맞는 분위기 신중·착잡/‘고향방문’ 일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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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11-08 00:00
입력 1997-11-08 00:00
◎일부선 “창피하다 집에 오지말라”

일본인 처 고향방문단 제1진을 맞이하는 일본의 반응은 신중하고 복잡하다.

동토의 땅에서 30여년만에 처음 돌아오는 ‘일본의 딸들’이지만 일본 정부는 고향방문 사업의 지속과 대북한 관계를 고려해 매우 조심스럽게 대응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일본인 처 체류기간동안 한명 한명에게 적십자 직원과 경찰 인력 등을 붙여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막고자 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북한은 ‘일본인 처 자유왕래 실현운동 모임’이 제출한 명단은 무시한 채 몇 차례 검사를 거쳐 문제가 없는 대상자들을 추렸다.일본의 한 북일관계 소식통은 “북한은 당초 50명을 보내겠다고 통보했지만 일본이 경비 대처에 무리가 있다고 난색을 표명,15명으로 줄어들었다”고 전한다.

한편 일본인 처 가족들의 반응은 크게 교차하고 있다.“향토 요리를 맘껏 들게하고 싶다.살아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며칠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하고 싶다”는 기뻐하는 혈육이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나와는 일절 관계 없다” “박정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지금 만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북한에 갈 때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고 등을 돌리는 친척들도 나오고 있다.

만나겠다고 하는 친척들 가운데에서도 집으로 찾아오는 것 만큼은 피하고 싶다고 희망,제3의 장소에서 만나는데 그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15명 가운데 7명의 일본 이름은 공표되지 않았다.한국식 이름만으로 불리게 된다.

일본인 처들이 북한에 건너간지 어언 38년.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어 겨우 ‘좁은 새장’을 나와보는 그녀들.그녀들의 고향방문이라는 거울에 오늘의 일본이 비춰지고 있다.<도쿄=강석진 특파원>
1997-11-0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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