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탑(세계 문화유산 순례:42)
기자
수정 1997-09-01 00:00
입력 1997-09-01 00:00
런던탑(Tower of London)은 말이 탑이지 실상은 도심의 성채다.입구에 들어서면 빨간 제복의 수위인 요우맨(Yeoman)이 눈길을 끌었다.아침이면 문을 열고 밤이면 문을 잠그는 일을 맡은 요우맨은 지금부터 600여년전인 1321년에 창설됐다.그들은 수위임무 말고도 런던탑의 온갖 사연을 관광객들에게 들려주는 안내원 노릇을 즐겨 자청하고 있다.
지금도 런던탑 안에서 생활하는 요우맨은 런던탑의 명물이다.런던탑을 찾은 그날도 요우맨은 과장된 몸짓으로 런던탑의 유령얘기를 꺼냈다.“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 나가봤다.그러나 아무도 없었다”는 등 얘기러리는 무진장했다.회색빛의 고색창연한 템즈강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런던 탑의 유령 얘기에는 관광객 모두가 귀를 쫑긋거렸다.그럴 때마다 신바람이 난 요우맨들은 “아직도 귀신이 나온다”고 허풍을 떨었다.귀신이 있고 없고 간에 런던탑에 얽힌잔인했던 피의 역사를 떠올리면 요우맨들의 귀신이야기에 공감이 갈 것이다.
○수위·안내원 ‘요우맨’ 명물
그들이 지금도 귀신을 팔아먹는 런던탑에는 ‘스카폴드 사이트’가 있다.왕비와 귀족들이 처형을 당했던 비극의 장소이다.과부가 된 형수 캐서린과 결혼한 헨리18세는 그것도 모자라 모두 6명의 부인을 두었다.형수이자 아내인 캐서린은 대를 이을 왕자를 바랜 헨리 8세의 기대를 저버리고 여러번 유산끝에 공주 메리를 낳았다.실망한 헨리 8세는 시녀였던 앤 볼레인을 또 아내로 맞았다.그러나 앤 역시 공주 엘리자베스를 낳아 왕의 뜻을 거슬린 죄로 사형을 당한다.네번째 부인 캐서린 하워드도 간통죄로 스카폴드 사이트 단두대에 서고 말았다.
나중에 왕으로 등극한 메리여왕이 카톨릭 신자들을 무참히 살해한 곳도 이곳이었다.그 시신을 태우는 쾨쾨한 연기가 매일 런던탑을 뒤덮었고 처형은 도끼로 목을 자르는 잔인한 방법이 동원됐다.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앤의 마지막 소원은 “제발 사형할때 도끼 말고 다른 것으로 해주세요”라는 것이었다.그렇듯 도끼처형은 무시무시한 공포를 자아냈다.
○왕비·귀족 처형당한 장소
어쩌다 왕궁이 살육의 상징물로 바뀌었을까.런던탑은 원래 왕의 권위와 힘의 상징이었다.1066년 영국을 침략한 프랑스 노르망디의 정복자 윌리엄이 자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영국인들의 항복을 받아 낸 정복자는 그해 크리스마스날 웨스터민스터사원에서 즉위식을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성을 짓기 시작했다.멀리 켄트지방에서 날라온 돌로 쌓아 지었다.높이 27·3m,지하 4·6m의 화이트 타워를 주축으로 한 성은 외국인 정복자 윌리엄처럼 위용을 드러냈다.지상에서 높은 곳에 출입구를 만들어 성벽을 파괴하는 무기가 닿을수 없게 설계됐다.화재가 나도 불길이 닿지 않는 요새였던 것이다.1666년 런던 대화재때에도 시민들의 불길을 피해 런던탑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런던탑은 항상 하얗게 잘 닦여져 있다.‘흰 성’이라는 뜻의 ‘화이트 타워’로 부르게 된 것도 이때문이다.탑은 런던시내와 템즈강을 내려다 보면서 영국을 9세기동안 호령했다.그리고 왕권과 비례해 런던탑도 커졌다.윌리엄 사후 1백년뒤인 ‘사자왕’ 리차드때부터 확장이 거듭됐다.외국인 정복자의 직계이면서도 색슨계의 이름을 가진 영국왕 에드워드1세때는 외성을 갖추었다.
성 밖에다는 참호를 팠다.그제야 런던탑은 외부의 적들이 침입하기 어려운 난공불락의 철옹성이 됐다.적들이 쳐들어 온댔자 도개교와 성문 등으로 겹겹이 둘러 쌓인 성에 이르지도 못하고 화살세례를 받았다.게다가 1천여명의 군사를 수용할수 있던 워털루 타워는 늘 런던탑을 지켜주었다.
런던탑은 애초부터 많은 비극을 잉태했는지도 모른다.런던탑을 지어놓고도 왕은 사실상 사용하지 않았다.1100년 타워가 완공된뒤 왕의 고문이자 비열한 인격을 지녔던 라눌프 플램바드가 감금된 일이 있다.그런데 2층 창문에서 밧줄을 타고 탈출에 성공했다.그로부터 144년후 같은 장소에 갇힌 웨일즈의 왕자 그루피드도 같은 방법으로 도망하려다 밧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떨어져 숨졌다.
○‘화이트 타워’로 불려
런던탑에서는 한때 동물을 키웠다.헨리3세는 독일 황제와 노르웨이 왕으로부터 받은 표범과 북극곰,프랑스 왕이 보낸 코끼리 따위를 사육하는 라이언 타워를 만들었던 것이다.그러나 1834년 라이언 타워는 폐쇄되고 동물들은 리전트공원 동물원으로 보냈다.런던탑은 5백년동안 영국의 화폐를 찍어낸 역사도 감추어 두고 있다.<런던=박정현·송기석 특파원>
1997-09-01 1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