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위금을 장애인학교 ‘밀알’로(박갑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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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08-27 00:00
입력 1997-08-27 00:00
높은자리에 오르자 친상을 당한 사람이 있다.문상객이 줄을 이을밖에.입정사나운 사람들은 조위금 계산부터 한다.그러면서 삐죽거린다.“돌아가신 분이 효모로군 그래”.어버이가 자식한테 하는 효도도 있게된 세상이다.아무리 푼더분하게 장례를 치렀다해도 돈은 남았을터.그높은 분은 그돈을 어디다 어떻게 쓴걸까.그런걸 생각하면서도 최전장관의 유족은 고인의 이름에 짯짯한 향기를 하나더 얹어 주었구나 싶기만하다.
탕평책을 주장했던 영조때상신 조현명이 정승으로 있으면서 상처했다.부의가 많이 들어왔다.장례를 마치자 부의받는 일 맡은 사람이 남은돈으로 땅을 사면 어떻겠느냐고 물어왔다.큰아들에게 상의했냐니까 찬성했다는 대답.그는 술을 잔뜩 마신다음 아들들을 불러놓고 소리높인다.“이 못난 것들아,너희가 부의로 들어온 재물로 땅을 사려하다니 부모상을 이익으로 삼으려는 것이냐.나 죽으면 제사지내줄 자식도 없겠구나”.목놓아 울고난 다음 부의를 모조리 가난한 일가와 궁한 친지들에게 노느매기하고 있다(박재형의〈해동속소학〉).
같은 영조임금 3년에 역시 상처를 했던 상신 김좌명은 그래서 아예 사람을 피하여 장례를 치른다.처음 양주땅에 가매장했다가 어느날 동대문쪽으로 반혼(신주를 모셔오는 일)한다 해놓고는 배편으로 서빙고를 거쳐 남대문으로 들어왔다.그는 병조판서로서 수어사를 겸하고 있었으므로 처신을 조심했던 것.이사실을 적은 〈공사견문록〉은 이렇게 평가한다.“이 말세에 이런 처지의 사람은 이렇게 하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옛 사람들은 돈을 가리켜 가장 훌륭한 종이면서 한편 가장나쁜 상전이라고들 말해온다.F 베이컨도 어디선가 그런 말을 한일이 있다.평생을 두고 ‘훌륭한종’으로 부려먹어야할 돈이건만 ‘나쁜상전’으로 만들면서 그 앞에서 움츠러들고 있는 사람들.최 전 장관의 유족은 ‘훌륭한 종’으로 만들면서 상전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나를 보여준다.〈칼럼니스트〉
1997-08-2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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