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고대 대학원> 베트남 3개월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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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07-24 00:00
입력 1997-07-24 00:00
겨울의 끝자락이 봄기운 속으로 녹아들던 지난 3월 중순.나는 베트남 하노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3개월간의 긴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93년 체결된 한국베트남 자원협력 프로젝트 사업의 연구원 자격이었다.
하노이공항은 김포공항의 10분의 1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베트남 전통옷인 ‘아오자이’를 입은 여인들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다.하노이 시내 곳곳에서 보이는 우리나라 회사들의 간판.특히 시내 차량 가운데 70%가 국산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뿌듯했다.
하노이 젊은이들의 모습은 밝았다.이제 개방에 익숙해져 있는 듯했다.
베트남은 금 은 석탄 철광 등 지하자원이 풍부한 나라다.나는 호치민시티를 비롯 베트남 전지역의 자원을 탐사하며 여행길에 올랐다.
베트남은 통일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북간 빈부 차가 있었다.특히 사회간접자본에 있어서 남쪽이 훨씬 나았다.이의 대부분은 통일전 미국이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끼연,호치민시티 등 남부 도시는 많은 고층 빌딩들이 눈에 띄였다.반면 깜파,할롱베이 등 북부지방은 20년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생활수준에 있어 남쪽이 북쪽의 2배 정도 높았다.
북쪽 사람들은 개방후 일자리를 찾아 남쪽으로 몰리고 있었다.일부 북부지방 사람들은 산에서 화전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여기에 따르는 환경파괴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베트남은 전쟁전 미국이 건설해놓은 고속도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당시 시설이 미비했던 북쪽지방은 현재도 국도급 도로가 고속도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개방이후 외국자본은 사회간접자본이 비교적 잘된 남쪽에 집중되었고 점차 남·북 차는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통일뒤 문호를 개방하지 않은 후유증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3개월동안 베트남을 둘러보면서 언뜻 북한 생각이 스쳐갔다.우리도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다.혹시 베트남과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기우일까.<박준석 기자>
1997-07-2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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