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사망 슬픔 잠긴 이대중 수경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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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06-04 00:00
입력 1997-06-04 00:00
지난 2일 시위진압 도중 숨진 유지웅 상경(22)의 소속부대인 경남 김해시 502중대.한총련 출범식 시위 지원을 위해 지난달 29일 상경한 중대원 170여명 가운데 현재 5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중대 고참인 이대중 수경(22)은 부상당한 후배들을 보면 아픔과 슬픔을 함께 느낀다고 한다.이수경은 『지웅이의 사망소식을 듣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며 『그저 지웅이를 이렇게 만든 학생들이 원망스러울 뿐』이라고 울먹였다.
이수경도 이번 시위 진압과정에서 쇠파이프에 어깨를 맞았다.『이제 대학생들을 보면 겁부터 난다』고 이수경은 고개를 떨구었다.
95년 8월에 입대한 이수경은 지금까지 20여 차례의 시위진압에 나섰다.제대를 5개월 남겨놓고 있지만 아직도 시위현장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화염병을 맞고 대학생들에게 포위 당하는 끔찍한 악몽도 자주 꾼다.
이수경의 온 몸은 크고 작은 상처들로 얼룩져있다.『집에 안부 전화를 할때면 어머니께선 「항상 조심하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당부의 말을 하신다』고 말했다.
이번에 서울에 지원나와 생활한 6일 가운데 4일 밤을 꼬박 길바닥에서 지새웠다.군화도 벗지 못한채 25㎏이나 나가는 방석복을 입고 잠깐 새우잠을 잤을 뿐이다.학생들의 기습시위 때문에 밥도 제때 먹지 못했다.
방독면을 쓰고 달릴땐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거친 호흡으로 방독면안은 금새 뿌연 습기로 가득차고 시야는 흐려진다.전경들은 이때 가장 큰 위험을 느낀다.언제 어디서 시위대가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수경은 『화염병과 쇠파이프,돌맹이가 난무하는 것은 시위가 아닌 폭력』이라며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끼리 왜 이렇게 생명까지 팽개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제대후 대학에 진학해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이수경.그러나 『대학에 가더라도 절대 데모는 하지 않겠다』며 굳게 입술을 깨물었다.<박준석 기자>
1997-06-0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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